리비아軍 또 발포… “사망자 최대 300여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1일 03시 00분


시위 6일째… 희생자 장례식 조문객에 난사 20명 숨져
이란서도 “게릴라조직 동원 시위진압” 대형참극 우려

중동의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 유혈 사태로 치닫고 있다.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전국 6개 도시로 확산되고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군경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가운데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벵가지 등에서 지금까지 최소한 200명이 희생됐다고 현지 의사가 20일 AP통신에 밝혔다. 그는 “나는 울고 있다. 왜 국제사회는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라고 호소했다. AP통신은 반정부 시위 6일째인 20일 현재 사망자가 300명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18일 정부군에 살해된 35명의 시위자 시신을 담은 관들을 공동묘지로 운구하는 장례 행렬이 카다피 19일 관련 시설을 지날 때 보안군이 공중에 먼저 총을 쏜 뒤 군중을 겨냥, 발포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로 인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외신들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안군이 민간인에게 군사 작전과 다름없는 무자비한 공격을 했다고 전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군 저격병들이 장례식에 참석한 수천 명의 군중을 조준 사격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보안군이 군중을 향해 14.5mm 구경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고 말했다. 보안군이 폭탄을 던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랍권 TV뉴스 알아라비아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막내아들 카미스 카다피가 발포를 명령했다”고 전했다. 카미스는 리비아 최정예 부대인 카미스여단을 지휘하며 18일부터 시위 진압을 위해 주요 도시에 자신의 부대와 외국 용병이 포함된 민병대를 배치했다.

AP는 보안군의 공격을 받은 사망자 중에는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머리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고 사상자 대부분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도 병원에 실려온 사망자 중 15명은 고성능 저격용 소총에 관통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추모 군중에 대한 보안군의 발포는 군중에 대한 학살이나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리비아 특수부대원들은 또 19일 새벽 벵가지 등대 앞 텐트촌을 급습해 며칠째 시위를 계속해온 판사, 변호사들에게 최루탄을 던지며 해산시켰다. 보안군이 이처럼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지만 시위는 점점 수도 트리폴리 쪽으로 번지고 있다. AFP는 20일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000km 떨어진 벵가지에 집중됐던 시위가 200km 떨어진 미스라타에까지 번졌다고 전했다.

이란에서는 20일 오후 수도 테헤란 곳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AFP에 따르면 이란의 한 야권 웹사이트는 “경찰이 (테헤란) 발리아스르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위대도 시내에서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경찰에 쫓기면서도 구호를 외치고 다시 도망가는 게릴라식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시위대가 모이기로 한 광장들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서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란 국내 매체는 시위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외국 기자들은 시위 현장 취재를 금지당했다.

시위대를 긴장시키는 소식도 전해졌다. AP통신은 이란 친정부 통신을 인용해 “일군의 무장단체가 이날 반정부 시위의 참여자들을 향해 발포할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라크에 본부를 둔 이란 무장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 할크’가 시민들을 총으로 쏴죽이기 위해 이란에 도착했다”며 “최대 규모로 예상되는 이날 시위는 가장 폭력적인 시위로 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멘 수도 사나에선 20일 대학생 3000여 명과 시민들이 33년간 장기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으나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날엔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쏴 1명이 숨지고 최소 5명이 다쳤다. 시위가 시작된 16일 이래 사망자는 10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중동의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악화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각국 정부가 강경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면서 “미국은 평화적인 시위에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의식한 듯 18일 수도 마나마의 펄 광장 유혈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바레인 상황은 다소 진정됐다. 19일 국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셰이크 살만 빈 하마드 알칼리파 바레인 왕세자가 펄 광장 봉쇄를 풀고 야권 세력과 대화에 나섰다. 시아파 지도자인 압둘 자릴 칼릴은 AP에 “대화 제의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에 주둔했던 군 병력과 장갑차가 철수한 뒤 시위를 주도해온 시아파 무슬림 수만 명은 펄 광장을 다시 차지했다.

한편 지난달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된 튀니지의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대통령이 대통령궁 서재의 비밀 공간과 커튼 뒤편 등에 숨겨 놓은 각종 귀금속과 돈뭉치가 발견됐다. 튀니지 제1 국영TV는 귀금속과 수백만 달러 상당의 달러화, 유로화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을 화면으로 보여줬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드메일은 벤 알리 전 대통령 일가가 캐나다에도 최대 200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숨겨놨다고 보도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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