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경 안젠(安檢·안전검사소)을 지키는 무장경찰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계 최대의 광장은 역설적이게도 좁은 출입구 5곳에 마련된 안젠을 통해야만 드나들 수 있다. 이날 매연이 섞인 뿌연 겨울 안개가 무겁게 짓누른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이랬다. 무장경찰은 꼼꼼했다. 이들은 가방류는 무조건 X선 검색기를 통과하도록 지시했다. 평소 작은 가방은 X선 검색기를 거치지 않고도 들고 갈 수 있었다. 톈안먼 동쪽 지하통로 검색대에서는 여자 공안이 휴대용 금속탐지기로 광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몸을 한 명 한 명 훑었다.
○ 27일 2차 시위 예정… 당국 경계 강화
지난해 7월 위구르족이 한족을 무차별 살해한 2009년 우루무치(烏魯木齊) 유혈사건 1주년 기념일 때 한족과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 특히 이슬람교도로 보이는 사람들은 이 광장까지 오기 위해 여러 차례 검문을 받아야 했다. ▼ 무장경찰, 날카롭게 좌우 경계… 사복경찰도 늘어 ▼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톈안먼 앞 동쪽 출구를 통해 왕푸징(王府井)으로 향하던 중 국가박물관 못 미쳐 설치된 임시 검문소에서 검문검색을 목격했다.
20일 돌발 시위에 놀란 중국 당국은 ‘재스민 바람’ 차단에 초비상이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27일 2차 시위를 벌이자는 말이
확산돼 당국은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다음 달 초 개최)를 코앞에 둔 시기여서 더욱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이동통신과 중국연합통신 등 양대 통신사의 ‘그룹 문자메시지’ 기능은 한때 쓸 수 없었다. 또 여전히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는 ‘재스민(중국어 모리화·茉莉花)’이란 단어가 표시되지 않는다. 홍콩 밍(明)보는
“당정이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총가동됐다”고 한 반체제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베이징 택시운전사에게 전날 시위 발생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부패와 물가폭등을 잡지 않으면 (시위 사태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삼엄한 분위기 속 팽팽한 긴장감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유혈 진압된 뒤 톈안먼 광장은 중국인과 세계인의 가슴에 중국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크고 작은 민주화 또는 인권 시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2001년 파룬궁(法輪功) 추종자들이 중국 정부의
탄압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곳도 이곳이었다. 때문에 올림픽 같은 국가적 행사나 톈안먼 사태 기념일, 심지어 인권을 강조해온
서방 지도층 인사의 방중 등 민감한 시기엔 어김없이 광장은 삼엄한 분위기로 바뀐다.
21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날 광장과 1km 남짓 떨어진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왕푸징에서 일부 시민이 재스민 꽃을 뿌리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인 영향으로 경비 수준이 높아졌다.
광장의 국기게양대 주변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보였다. 관광객들 사이로 키가 180cm를 훌쩍 넘어 보이는 건장한 젊은
무장경찰들의 녹색 제복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전엔 제복의 무장경찰은 국기게양대 옆에서 부동자세를 취했을 뿐 군중 속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들은 2, 3초에 한 번씩 좌우를 돌아보면서 마치 로봇처럼 날카롭게 주위를 훑었다. 무장경찰 10여 명이
3열 종대로 대오를 맞춰 광장을 행진해 어디론가 향했다. 광장에는 공안차와 공안이 도처에 배치됐다.
중국인 장모 씨(44)는 “평소보다 사복경찰이 많이 배치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슬람교도로 보이는 흰색 터번을 두른 일군의 관광객을 가리키며 “저 주위에는 사복경찰이 몰려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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