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내전사태]트리폴리 신한건설 팀장이 전한 현지상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폭도들 차량-컴퓨터에 그릇까지 싹쓸이… 건설현장 초토화”

건설 장비, 차량, 컴퓨터처럼 값나가는 물건은 물론이고 작은 그릇까지 싹쓸이해 갔더라고요. 한마디로 초토화됐습니다.”

리비아 현지 주민들의 자위야 건설 현장 약탈 사건이 발생한 21일(현지 시간) 30분 거리의 트리폴리 외곽 마무라 주택건설 현장에 있던 신한건설 김모 팀장은 2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팀장은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 간 직원들에게서 이같이 보고받았다며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고 놀랄 틈도 없이 직원들은 폭도들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 자위야 공사 현장에서는 차량을 약탈하려는 폭도들과 한국인 직원 3명, 방글라데시인 근로자 2명 사이에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 팀장은 당시 방글라데시인 직원 2명이 경상을, 한국인 직원 3명이 찰과상을 입었으나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 리비아 내 5개 공사 현장에 흩어져 있던 신한건설의 한국인 직원 90여 명과 방글라데시 등 제3국 직원 2900명은 트리폴리 남쪽 외곽에 위치한 마무라 지역의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이동해 함께 지내고 있다.

김 팀장은 “현장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여러 명이 함께 있다 보니 현지 폭도들도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특히 이들이 머물고 있는 트리폴리 공사 현장 앞은 카다피 지지세력과 부족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 유지들이 오전 6시까지 불침번을 서며 지키고 있다. 김 팀장은 “유지들이 찾아와 당신네 회사가 나가면 우리 지역은 발전할 수 없으니 공사를 끝낼 수 있게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며 “현지인들이 한국 기업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통신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빼고는 별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지만 식량이 열흘 치밖에 남지 않은 것이 문제다. 비상대책상황실을 차린 신한건설 본사는 식량이 바닥나기 전까지 한국인 직원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편 김 팀장은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국영방송에 출연해 “카다피를 사랑하는 남녀는 지금 거리로 나가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라”고 선언한 이후 실제로 많은 사람이 국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후 트리폴리 일대는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23일 오전에는 주유소와 상점 대부분이 문을 열었고 리비아인 직원 일부도 정상 출근했다”며 “식량 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보여 직원들의 불안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 팀장은 “현지 직원 중 일부는 어제까지 ‘반(反)카다피’를 외치다 오늘은 ‘친(親)카다피’를 외치는 등 리비아인들도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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