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민주화 소용돌이]‘재스민 불길’ 어디까지… 駐중동 대사 4명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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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젊은층 불안감 폭발… 탈레반式 극단정권 원하지는 않아”

민주화 바람이 거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들이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과 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주 주알제리 대사, 신현석 주요르단 대사, 김종용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박규옥 주예멘 대사.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민주화 바람이 거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들이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과 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주 주알제리 대사, 신현석 주요르단 대사, 김종용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박규옥 주예멘 대사.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나세르가 혁명을 통해 이집트 대통령이 되고 보니 국민 3500만 명 중 자기보다 멍청한 사람이 사다트뿐이었대요. 그래서 부통령에 임명했어요. 나세르가 죽자 사다트가 정권을 잡았고 또 자기보다 유일하게 멍청한 무바라크를 부통령에 앉혔대요. 사다트가 죽자 집권한 무바라크는 자기보다 멍청한 사람을 찾지 못해 35년 동안 혼자 독재를 했대요.”

김종용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는 24일 이집트 현지에서 유행하는 농담을 소개하며 “이집트는 공화정이지만 대통령은 정통성이 없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이지만 왕과 국민의 소통이 잘되는 나라였기 때문에 최근 민주화 바람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풍이 이집트를 넘어 리비아에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중동·아프리카 4개국 주재 대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 대사와 신현석 주요르단 대사, 최성주 주알제리 대사, 박규옥 주예멘 대사는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24일 동아일보가 마련한 좌담회에 참석했다. 좌담회는 서울 중구 무교동 롯데호텔에서 한 시간 넘게 진행됐다.

―사우디 등 4개국에서는 리비아와 같은 극단적 충돌은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 대사=사우디 국왕은 자주 주민들이 사는 ‘사랑방’에 가서 민심을 듣는다. 주민들이 고충을 쪽지에 써서 올리면 국왕 자문위원회가 다 처리한다. 하의상달과 상의하달의 소통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 리비아나 이집트와의 가장 큰 차이다.

최 대사=알제리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있었지만 크게 악화되지 않고 있다. 알제리는 10년 전 이미 리비아 같은 상황을 경험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습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제리는 1988년 사회주의를 버리고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10년 동안 기득권 세력과 종교 세력이 충돌하면서 극심한 내전을 겪었다.

―그래도 4개국이 민주화 열풍에서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신 대사=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된다. 요르단도 국회가 있지만 국왕이 총리와 내각을 임명한다. 그래서 의원들이 다수당 연합으로 총리를 뽑는 영국식 입헌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2009년에 물가가 대폭 오르고 실업률이 오르자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사=예멘에서도 젊은이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중동 전체 인구의 65%가 25세 이하다. 체제 순응적인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이렇게까지 확대될 줄 알았나.

김 대사=솔직히 처음에는 몰랐다. 알았다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모든 사람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원하고 기대했지만 그가 10일 즉각 퇴진을 거부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태가 확산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여다보니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은 군이 아닌 비밀경찰에 의존했고, 이집트의 군은 귀족군과 빈민군으로 분열돼 있었다.

신 대사=1일 무바라크가 올해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요르단 언론은 이미 ‘그의 퇴진에 관계없이 중동은 어제와 다르다. 중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민중권력이 들어서고 과거 프랑스처럼 주변국에 혁명을 수출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은 이 지역에 반미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김 대사=온건하든 강경하든 지금 중동 대부분은 반미라고 할 수 있다. 중동 사람들은 “미국이 우리를 걱정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걱정한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 지성인들은 의외로 현명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같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신 대사=그래서 이번 중동 사태는 오히려 한국이 중동과 경제협력을 확대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란에 한류가 분 것은 미국 문화가 차단된 공백을 메웠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요르단에 부임한 신임 알제리 대사를 얼마 전 만났다. 그는 경제적 의존관계인 프랑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

―중동 사람들이 내부적으로는 투명한 정치체제를 요구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 유럽 강대국 등과의 종속 관계에서 탈피하려는 걸 활용하자는 것인가.

김 대사=그렇다. 원조와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큰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서구는 중동에 원조를 정성스럽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이 서구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기술을 가르치고 청년실업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 기회다.

최 대사=한국에 대한 알제리의 인식이 매우 좋다. 그에 기여한 기업이 대우다. 1980년대 알제리가 내전에 휩싸였을 때 외국기업들은 전부 빠져나갔지만 대우는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도 알제리 사람들은 국제적 무관심 속에서도 남아줬던 대우를 기억하고 있다. 기업이 어떤 위험에도 끝까지 남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진정성을 보여줄 때라는 것이다.

박 대사=중동 젊은이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 공공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신 대사=한국의 고급문화를 중동 사람들에게 소개할 문화원 설치가 시급하다. 요르단 암만에도 중국의 공자학원이 있다. 문화원을 설치할 정도로 문화강국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중동 사태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 대사=북한도 민주화의 흐름에 예외일 수 없다. 중동 사태의 배경에는 경제난, 박탈감, 정치적 압제가 있다. 그동안 촉매제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TV에 나와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을 알린다. 북한은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중동 사태의 영향을 덜 받지만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피할 수 없다. 중동 사태를 촉발시킨 촉매제만 있으면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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