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26일(현지시간) 대(對) 리비아 제재 결의는 10시간여의 마라톤 회의 끝에 채택됐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이라크 등지에서 잇따른 소요 및 유혈 사태가 있었지만 안보리가 리비아 사태에 대해 결의를 채택한 것은 민간인 시위대에 대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1000여 명이 숨진 현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유엔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반기문 사무총장이 전날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시간을 끌수록 인명이 희생된다"며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할 것"을 촉구한 것이 안보리의 속전속결결의 채택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AP, AFP 등 외신들은 전했다.
안보리는 전날 영국과 프랑스가 마련해 회람한 초안 내용 가운데 카다피 정권에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즉각 실행하고, 카다피와 그 자녀 및 핵심 측근에 대한 여행금지 및 해외자산을 동결하는 결의 내용의 골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합의를 봤다.
문제는 카다피 정권의 무자비한 시민 공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내용을 결의에 포함시킬 지 여부였다.
전통적으로 안보리에서 개별 국가에 대한 제재를 반대해 왔던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ICC 회부가 너무 앞서나가는 조치가 아니냐며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안보리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할 뿐 아니라 거부권까지 갖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모두 ICC 회원국이 아니다.
미국이 수단 다르푸르 내전에서 발생한 잔혹행위를 ICC에 회부하기 위한 안보리표결에서 기권했던 것만 봐도 ICC 비회원국들이 특정 사안을 ICC에 회부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떨떠름하게 생각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리비아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이날 회의에서는 ICC 회부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애시당초 갖고 회의에 임했다고 유엔 관리들은 전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중국 대표는 이날 오전 문안 조정과정에서 본국의 훈령을 기다려야 한다며 시간을 끌었고, 결국 본국의 최종 지시를 받고서야 이날 저녁 결의내용에 마지막으로 찬성했다.
ICC 회부 내용이 포함된 결의 채택에는 유엔 주재 모하메드 샬람 리비아 대사의 서한도 한 몫했다.
카다피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샬람 대사는 이날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리비아 국민들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지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카다피 정권의 ICC 회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안보리 결의가 제재 이행을 위한 구속력을 규정하고 있는 유엔헌장 7장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군사력 사용까지 허용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유엔 관계자들은 당장 리비아에 군사적 개입을 할 계획도 없으며, 그런 취지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헌장 7장은 군사력 사용뿐 아니라 경제적 제재를 포괄하는 것이며 제재 이행의 구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항"이라며 "리비아에서의 군사력 사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이 국제적 고립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88년 대부분이 미국인인 승객 270명이 숨진 팬암 103기 폭파 사건에 리비아 정보기관이 개입됐다는 정황이 드러났을 당시에도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가 쏟아졌었다.
카다피 정권은 2003년 폭파 사건의 책임을 인정했고,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미국과 리비아는 2009년 35년만에 처음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재수립했고, 리비아는 27억달러의 보상금을 희생자 유족들에게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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