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AT에 경찰견까지…계엄 방불케한 왕푸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7일 17시 38분


"당신 뭐야, 빨리 움직여, 서 있지 말란 말이야."

2차 '재스민 시위'가 예고된 27일 오후 2시.

멀리 시계탑에서 2시 정각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시위 장소로 지정된 베이징 왕푸징의 중심지 KFC 앞에서는 도처에 깔린 공안들이 머뭇거리는 행인들을 향해 연방 소리쳤다.

20일 1차 시위 기도로 바짝 긴장한 공안은 이날 오전부터 왕푸징 전역에 정, 사복 경찰력을 대거 배치해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했다.

왕푸징 거리 초입인 지하철역 출구에는 공안차량 수십대가 진을 친 가운데 대테러 전담 부대인 특수기동대(SWAT) 요원들까지 무장을 하고 거리를 지켰다.

정복을 입은 공안들은 거의 10m마다 짝을 이뤄 자리를 잡고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신분증과 가방 검사를 했다.

사복을 입었지만 귀에 무전기 수신기를 꽃은 사복 공안들도 곳곳에 깔려 이날 왕푸징에는 '관광객 반, 공안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안은 짐 수색을 통해 카메라와 캠코더를 가진 사람들이 왕푸징 거리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평소 카메라를 든 관광객이 넘실대던 왕푸징 거리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관광객들이 무서워할 만큼 커다란 경찰견 세 마리가 한꺼번에 투입돼 공안과 함께 순찰을 해 왕푸징 거리에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물씬 풍겼다.

시위 장소로 지정된 KFC 앞에는 공안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려 경비가 더욱 삼엄했다.

공안은 혹시 KFC 앞에서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가게 바로 앞에 살수차 서너대를 대 일반인들의 시야를 막았다.

시위 시간으로 지정된 2시가 가까워지자 주변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공안들까지 현장에 가세하면서 KFC 앞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영문도 모른 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려고 일부 관광객과 시민들이 머뭇거리자 공안들은 신경질적인 말투로 서 있지 말고 빨리 이동하라고 종용했다.

그렇지만 시위 시간으로 예고된 2시가 훨씬 지나도 시위로 볼 수 있는 돌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재스민 시위를 제안한 '발기인'은 인터넷 선동글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고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해라"고 제안해 사실 이날과 같은 상황은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이날 취재를 위해 왕푸징을 찾았던 외신기자들은 왕푸징 입구에서 검문에 걸려 진입에 실패하는가 하면, 용케 '잠임'에 성공했어도 KFC 앞에서 카메라를 드는 족족 공안에 의해 '강제 격리' 조치를 당했다.

공안은 KFC 앞에서 몰려든 공안의 모습을 찍는 기자들에게 다가와 여권과 기자증을 압수한 뒤 왕푸징 거리에서 걸어서 10여분 이상 떨어진 둥청 구 산하 왕푸징건설관리위원회로 데려가 신병을 넘겼다.

왕푸징건설관리위 관계자들은 미리 허가를 받지 않고 왕푸징 거리를 취재하는 것은 중국 법규에 어긋난다며 만약 다시 왕푸징 거리로 돌아가 취재를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여권과 기자증을 기자들에게 돌려줬다.

이날 연합뉴스를 비롯해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국적의 외신기자 수십 명이 '강제 격리' 조치를 당했다.

베이징시 공안국은 2차 재스민 시위를 앞두고 25¤26일 베이징 주재 외신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취재할 때 중국의 법규를 지켜주기를 바란다"며 구두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 정부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철저히 시위 동향에 관한 소식을 차단하고 있는 속에서 이날 왕푸징 거리를 지나던 일반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슨 영문으로 공안이 이처럼 많이 배치됐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성을 위안이라고만 밝힌 한 중년 남성은 기자가 상황을 먼저 설명해준 뒤에야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는 건 자유겠지만 중국의 사정은 아랍과 완전히 다르다"며 "미국식 민주주의를 13억 인구의 중국에 적용한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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