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저명 학자들과 거대 컨설팅 그룹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 명문대학인 런던정경대(LSE)의 하워드 데이비스 총장은 3일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총장직을 사임했다.
LSE는 2009년 카다피의 둘째 아들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운영하는 ‘카다피국제자선 및 개발재단(GICDF)’으로부터 북아프리카 개발 프로그램 명목으로 150만 파운드(약 28억 원)를 지원받기로 해 지금까지 30만 파운드(약 5억6000만 원)를 받아 연구비로 사용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LSE는 알이슬람이 2003년 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다. LSE는 리비아 차세대 지도자 400명을 위한 특별 경영수업까지 열었다.
또 데이비스 총장은 리비아 중앙은행과 투자은행에 투자 방법을 조언해주고 그 대가로 장학금 용도의 기부금 5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그는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기업과 정부에 영혼을 팔며 학문적인 독립성을 희생하는, 영국 대학이 처한 현실의 극단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데이비스 총장은 이날 학교 측에 보낸 사직 서한에서 “리비아와 연관된 자금을 받는 것은 좀 더 고려했어야 했다”며 “리비아에 경제적 조언을 한 것도 개인적인 판단 실수였다”고 털어놨다.
LSE는 알이슬람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에도 휘말렸다. 카다피 가문의 국제화된 엘리트로 각광받으며 후계자로 주목됐던 알이슬람은 2008년 이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은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의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 논문은 대필 작가가 썼고 표절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학 측은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데이비스 총장은 사직 서한에서 “학위는 올바르게 수여됐으며 기부금과 학위의 연관성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리비아 정부와 3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은 미국 보스턴 소재 세계적 컨설팅사인 모니터그룹과 이 과정에서 자문에 응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도 도마에 올랐다.
모니터그룹은 2006∼2008년 미국과 영국 출신의 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을 모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방문해 카다피를 만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은 리비아 야권이 입수한 비밀문서를 인용해 “이 과정에서 사례금과 컨설팅 비용, 여행 경비 등 돈이 오갔다”고 보도했다.
방문단에는 ‘소프트 파워’ 이론의 주창자인 나이 교수를 비롯해 ‘역사의 종말’ 저자 후쿠야마 교수와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었던 리처드 펄 전 미국 국방정책자문위원장 등 30여 명이 포함됐다. 특히 나이 교수는 알이슬람의 박사 논문에 조언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모니터그룹은 나이 교수를 포함해 당시 방문단에게 카다피의 철학을 다룬 책을 쓰자고 제안했던 일도 있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대화록에는 “카다피는 행동파이자 이상파지만 안타깝게도 서구에서 이해받지 못한 인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모니터그룹은 “책 출간 계획은 심각한 실수였다”며 “방문을 주선한 것은 카다피 정권이 서방에 좀 더 가까이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그 가능성을 잘못 판단했다”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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