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유출 가능성” 후쿠시마 原電 반경 3km 긴급대피
정유시설 30m 불기둥… 닛산-소니 “공장 올스톱”
11일 일본은 공항과 철도 등 교통망이 일순간에 마비됐으며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후쿠시마 현 원자력발전소는 지진 충격으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제기돼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여진도 50여 차례 잇따랐다. 여진의 대부분이 최근 뉴질랜드를 강타한 지진(리히터 규모 6.3)과 비슷한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었다.
○ 원전 방사능 유출 비상
일본 정부는 이날 원자력 긴급사태를 발령했다. 2000년 법 제정 이후 원자력 긴급사태 발령은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현에 있는 제2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연료봉이 노출되면서 방사능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주변 3km 이내 주민에게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또 반경 3∼10km 지역의 주민에게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요구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원자로 내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면서도 “이 같은 상태가 이어지면 연료봉이 노출돼 방사능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일 뿐 아직 방사능이 유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미야기 현 오나가와 원자력발전소의 원심분리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와 관련해 지진이 발생한 곳 근처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4곳이 안전하게 폐쇄됐다고 밝혔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통신시설이 파괴되는 등 산업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투자은행인 제퍼리 인터내셔널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전반적인 손실이 1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바 현 이치하라에 있는 정유업체인 코스모오일에서 화재가 발생해 30m 높이의 불길이 치솟았다. 일본 최대 정유회사인 JX니폰오일앤드에너지는 센다이 가시마 네기시 등 정유시설 3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AFP통신은 센다이에 있는 석유화학 공장에서 대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지바 현의 JFE홀딩스 철강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미야기 현과 시오가마(鹽釜) 시 경계에 있는 석유화학 콤비나트에서도 화재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일본의 3대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와 KDDI, 소프트뱅크는 이날 강진 이후 많은 지역에서 통신서비스가 지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주력 업종인 자동차와 전자업계도 타격을 받았다. 닛산자동차는 공장 4곳의 생산을 중단했으며,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도요타는 “직접적인 지진 영향권에 있는 미야기 현 공장과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며 “피해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제품업체 소니는 도호쿠 지방에 위치한 6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뒤 현지 공장 근로자들을 대피시켰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내 항구들이 폐쇄되고 하역 작업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 도쿄 대혼란
30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쿄와 인근 지역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도쿄에서도 리히터 규모 4∼5 수준의 지진이 관측됐다. 경찰은 도쿄 시내 한 학교에서 졸업식 도중 건물 지붕이 무너져 여러 명이 부상했고, 도쿄 중심부에 있는 구단카이칸홀 일부가 무너지면서 다수가 다쳤다고 밝혔다. 도쿄 시내에서 최소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했다. 도쿄 인근 지역에서는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붕괴되는 사고로 67세 남성과 여성 노인이 숨졌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400km가량 떨어진 곳이지만 도쿄 시내 고층 건물들이 좌우로 흔들리고, 사무실과 주택 내 선반 물건이 쏟아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도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온 333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인 도쿄타워가 지진의 충격으로 윗부분이 휘어졌다.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80km 떨어진 이바라키 현에서는 지은 지 1년밖에 안된 공항터미널의 천장이 무너졌다.
대지진의 여파가 도쿄까지 전해지는 데는 4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후 2시 50분경 동아일보 도쿄지사가 있는 아사히신문 도쿄본사 신관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m 높이의 책장이 출렁이며 꽂혀 있던 책들이 와르르 떨어졌고 선반 위의 TV도 바닥에 떨어졌다. 오후 근무 중이던 도심 건물 속의 회사원들은 엉거주춤 책상을 붙잡고 선 채 30분간에 이르는 격한 진동 속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건물 밖으로 대피하면서 도쿄 시내는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NHK방송은 도쿄시내와 외곽에 있는 건물 400만 채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고층 오피스빌딩이 몰려 있는 신바시(新橋) 인근은 건물 붕괴를 우려해 밖으로 몰려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40대 여성은 “가족과 휴대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일부 건물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재가 난 건물에 있던 회사원들이 오다이바와 신바시를 잇는 유리카모메 고가철로를 이용해 도심으로 피난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신칸센과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멈춰서면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귀가를 포기한 채 시내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주쿠역 등은 귀가를 위해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TV에서는 강력한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며 회사원들에게 사무실을 떠나지 말라고 권고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도쿄의 관문인 나리타 공항과 하네다 공항이 지진 이후 폐쇄되면서 항공대란이 빚어졌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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