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휩싸인 휴일의 도쿄…비탄 적막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3일 15시 19분


북동부 지역인 도후쿠(東北)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전역이 공포와 비탄, 적막에 얼어붙었다.

1300만 명이 거주하는 거대 도시인 도쿄(東京)도 13일 일요일을 맞아 적막한 모습이었다. 시민들은 외출을 꺼렸고 평소 북적이는 도심 쇼핑가와 공원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공원엔 산수유꽃이 만발하고 벚꽃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통행인들은 발길만 재촉했다. 도쿄 시민들에게 지진은 익숙하지만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는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 인적 뜸한 긴자(銀座)

도쿄의 번화가인 긴자의 중심가는 평소 주말이나 휴일 땐 걸어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붐비는 곳이지만 이날은 한산했다.

긴자의 중심가에 몰려있는 쇼핑가는 아예 철시한 상점도 있었고 문을 열어놓고 있는 곳도 종업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손님은 별로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곳이지만 외국인의 모습도 찾기 어려웠다.

쇼핑을 위해 긴자를 찾았다는 한 여성(56)은 "도쿄에서 살면서 자주 긴자에 들르는 편이지만 오늘은 너무 사람이 없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긴자에서 가까운 황궁 주변의 유서 깊은 명소인 히비야공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휴일에 가족을 동반한 나들이객이 많은 곳이지만 공원 곳곳의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산수유꽃과 매화꽃이 만발하고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벚꽃이 꽃망울을 떠뜨리기 시작해 해마다 이맘 때는 카메라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는 행락객이 많은 곳이지만 이날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오사카(大阪) 쪽에서 도쿄 나들이를 왔다는 20대 커플은 "도호쿠 지역의 지진으로 나라가 온통 슬픔에 잠겨있어 사진 찍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 시민들이 평소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신바시(新橋)역 앞 광장도 썰렁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말을 붙여도 길만 서두를 뿐 잘 대답하려하지 않았다.

도심에 사람들이 없는 것은 열도 전체가 대재앙으로 얼어붙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진 공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진 땐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생필품 사재기는 진정

평소 지진을 많이 겪어 큰 지진이 나도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도쿄 시민들이지만 이번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11일 오후 도후쿠에서 일본 국내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9.0의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도쿄에도 규모 5의 충격의 전달되자 도심은 순식간에 공포가 지배했다.

TV화면에 도쿄 도심의 일부 건물이 화염에 휩싸인 장면이 보도되고 지하철이 멈추자 도시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주택가나 사무실 주변 슈퍼마켓 등은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라면과 빵, 음료수 등은 금세 동이 났다. 일본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사재기가 현실화한 것이다.

하지만 지진 발생 3일째를 맞으면서 사재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주택가 슈퍼마켓에는 다시 라면과 빵, 음료수가 채워졌다.

신주쿠(新宿)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金모 씨(여·55)는 "지진이 발생한 날엔 슈퍼에서 라면과 빵 등 비상식품이 바닥났지만 오늘은 진열대가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지진 첫날엔 수도권 주변의 각종 교통수단이 끊기거나 지연 운행되면서 약 10만여 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관공서 등에서 밤을 지샜지만 지금은 교통에 별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경찰청 집계에 의하면 이번 지진으로 도쿄에서 사망한 사람은 5명, 부상자는 77명이다. 도호쿠 지역의 인명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도쿄 시민들은 언제 또 지진이 덮칠지 몰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시민(여·77)은 "언제 당해도 지진은 너무 무섭다"면서 "더 이상 재앙이 없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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