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제1의 도시 센다이는 13일 시내 곳곳의 건물이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전력과 물이 끊기면서 저녁이 되자 도시는 깊은 어둠에 갇혔다. 미야기 현 센다이 시 와카바야시(若林) 구의 해변 마을 아라하마(荒濱)에서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쳐놓고 취재진을 돌려보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들어오면 쓰나미에 대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오전에도 쓰나미로 바닷물이 여기까지 밀려왔습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이곳에선 11일 지진에 이은 높이 10m의 쓰나미로 최소 300여 명이 숨졌다. 약 500m 앞에 보이는 해변 마을의 가옥 지붕이 폴리스라인 인근의 논까지 떠내려 와 있었다.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시커먼 개흙 지대로 변했다. 가재도구를 집 밖으로 내놓던 60대 여성은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와카바야시 구 야마토(大和) 정의 양식당 ‘아베루’는 건물 외벽이 무너져 주차해 놓은 자동차를 덮쳤다. 식당 주인 아베 씨는 “그나마 지진이 식사 때를 넘겨 오후 2시께 일어난 덕분에 대형 참사를 피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고층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걸어서 오르내렸다. 난방이 되지 않고 물 공급도 끊겼다.
음식 부족도 심각했다. 강진 직후 철도와 고속도로 등이 끊어지면서 식자재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13일 센다이 시에서 문을 연 식당은 한 곳도 없었다. 24시간 편의점도 문을 닫았다. 기자도 12일 센다이에 도착한 이래 하루가 넘게 아무 음식도 구할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려면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하루 종일 포테이토칩 하나만 먹었다”고 말했다.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약 10차례 여진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제2의 충격’을 걱정했다. 택시운전사인 에가와 히로시(江川洋·25) 씨는 “운전 중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너무 놀라 이틀 동안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시민들은 시청이 마련한 피난처로 모여들었다. 센다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히가시로쿠방초(東六番町) 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피난처에는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12일 오후 10시경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시민들은 초에 불을 밝히고 모포를 뒤집어쓴 채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도호쿠대 박사 과정의 세노 유이코(瀨野結衣子·28·여) 씨는 “12일에는 세 끼 모두 주먹밥 하나가 배급됐지만 13일에는 2개로 늘었다”며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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