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슈(本州) 남단의 시마네(島根) 현 소재 전력회사에서 정년을 6개월 남긴 59세 남성이 15일 600km가 떨어져 있는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모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원전사고 지역에서 탈출하는 순간 그는 ‘사지(死地)’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18세부터 41년간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해와 올 9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그를 방사성 물질 누출 현장으로 내달리게 한 것은 평생의 경험을 원전 사고 수습으로 불태우겠다는 ‘장인 정신’이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미래가 좌우된다. 사명감을 갖고 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의 아내는 “평생을 원전 안전에 몸 바친 당신을 믿는다. 사고지역 주민들에게 안전과 안심을 선물하고 돌아오라”며 남편을 배웅했다. 아버지의 결심을 전해들은 딸은 “처음엔 말렸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직업정신을 존중한다”며 눈물을 삼켰다.
이날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지지통신이 관련 기사를 보도하자 감동한 수많은 시민들은 그의 가족에게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선 “눈물이 난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거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제발 잠재워 주세요”라는 존경과 응원 메시지가 넘쳐났다.
대지진과 쓰나미, 방사성 물질 누출이 한꺼번에 닥친 최악의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임을 마치려는 ‘보통사람’들의 철저한 직업정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소마(相馬) 시에선 동네 반장 수십 명이 자발적으로 뭉쳤다. 이들은 눈에 띄는 조끼를 입고 주민의 안부 확인과 식료품 배급, 의약품 조달, 피난 지시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쓰나미에 아들을 잃은 사람도 있고 자신의 집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장을 누비는 이유를 이들은 한마디로 말한다. “반장이니까.”
반장들 중에서도 리더 역할을 하는 사토 다카히데(佐藤孝秀·57) 씨는 “내가 담당하는 지역에서도 2000명 가운데 3분의 2가 연락 두절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냐. 반장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토 씨의 장남(31)은 소방대원으로 11일 쓰나미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다 파도에 휩쓸려간 뒤 연락이 끊겼다. 또 다른 반장 오다니 료이치(大谷亮一·67) 씨는 “우리 동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마당에, 반장으로서 살아남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무슨 일인들 못하겠냐”라며 팔을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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