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에도 침착과 배려를 잃지 않던 일본인들에게도 인내의 한계가 다가오는 걸까. 방사성 물질 누출 사태가 확산된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이 15, 16일을 기점으로 평상심을 잃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피난지역으로 설정한 범위 밖의 센다이(仙臺) 시 등에서도 탈출 러시가 이뤄지고 도쿄 등에선 일부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작 구호물자가 절실한 피난지역엔 먹을 것이 부족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한 정부도 긴박해졌다. 16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긴급재해대책본부 회의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먹을 것과 물, 연료가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자위대가 나서라. 물품배급을 자위대로 통일하라. 총력을 기울여라.”
곧바로 미야기(宮城) 현 소재 마쓰시마(松島) 기지에 눈이 내리는 악천후를 뚫고 비상구호품을 가득 실은 대형수송기가 착륙했다. 자위대 수송헬기는 물론이고 미군 수송기 C130까지 동원됐다. 군용트럭들은 해안마을 쪽으로 즉시 출발했다.
총리가 불같이 호령하고 자위대가 긴급 출동할 정도로 현재 재해지역 물품 부족사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공업 생산량이 막대한 일본에서 “제발 물 좀 달라. 이러다간 굶어죽는다”는 아우성이 빗발치는 것.
식량 품귀현상이 빚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11일 이후 동북부 지역의 생산공장이 거의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반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원전공포까지 겹치면서 상당수 사람이 식료품과 연료를 비롯한 비상물품 비축에 나섰다. 정부와 언론이 방사성 물질 누출과 여진에 대비해 “가급적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집이나 사무실에 머물라”고 당부하자 국민의 불안심리가 발동한 것. 방사성 물질이 15일 도쿄까지 날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3000만 명이 사는 수도권에서도 마스크와 방사성 물질 해독제로 알려진 안정화요오드가 함유된 제품이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일부 지역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곳곳의 도로가 붕괴돼 유통망이 무너진 것도 물품 부족을 야기한 원인이다. 주요 고속도로의 상당수 구간이 통행 금지됐고 해안지역 피난소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는 진입이 불가능한 곳이 많다. 부두가 많이 망가져 해안 보급망도 거의 가동할 수 없다. 가솔린 부족 사태 또한 물품 공급을 불가능하게 했다. 피해지역의 대형 석유정제시설 9곳 중 6곳이 가동을 멈춰 매일 100만 배럴의 원유처리 능력이 상실됐다.
급기야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진 피해지역으로 연료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사재기를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가노 미치히코(鹿野道彦) 농림수산상도 “필요 이상의 식량을 비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긴급 동원한 데 이어 서일본 지역의 공장 생산량을 최대한 늘리고 비축 석유를 긴급 방출하는 등 비상대책 운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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