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가동이 중지된 지 일주일. 세계 원자력 산업계의 관심이 일본 동부의 원전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이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는지에 따라 세계 원자력 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선진국이던 일본에서 사고가 나자 원전 이용국들은 ‘원전 드라이브’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있다. 공격적으로 원전을 건설하던 중국은 새 원전 27기의 건설을 잠정 중단했고 현재 가동 중인 13기에 대해 안전점검을 하기로 했다. 독일은 노후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했고 벨기에는 당분간 원전 추가 건설이나 노후 원전의 가동시한 연장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전체 전력의 80%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는 자국 내 19개 원전에 있는 원자로 58기에 대해 총체적인 안전 점검에 들어갔다. 미국 역시 원전 시설 점검에 들어갔다.
이번 사태로 원전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당장 원자력에너지를 대체할 천연가스와 석탄 등 화석연료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화석연료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럽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인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는 12월 인도분 탄소배출권이 지진이 발생한 11일 이후 10%나 뛰며 17일 t당 17.76유로(약 2만8200원)로 2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가격은 지진 이후 25%나 하락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전 산업의 앞날은 일본에 달려 있다”며 “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칫 대재앙으로 끝날 경우 체르노빌 사건 이후 원전 산업이 20년간 ‘빙하기’에 빠졌던 것과 같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요 원전 보유국들이 원전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체르노빌 사태가 있었던 1986년 직후와 달리 석탄, 석유 등 탄소연료에 대한 저항감도 크기 때문이다. 또 이미 세계 전체 전력의 13.5% 정도를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가동 중인 원전을 해체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다. 풍력, 태양광, 조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도 아직 경제성이 낮아 당장 원자력을 대체하기도 힘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원전은 미국 에너지의 중요한 재원”이라며 원전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탈리아는 최신형 원자로 4기의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에너지 정책은 바로 바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안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지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도 쉽사리 원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21개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으며 7기는 건설 중이다. 4기는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한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전력 발전량 중 31.4%가량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2030년까지는 이 비중을 59%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정부는 모든 국내 원전에 대해 안전 점검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 자체를 재검토할 시점은 아니라고 밝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석유가 없고, 석탄도 부족한 데다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대체할 방법이 없다”며 “수십 년 이상 원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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