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바레인 예멘을 넘어 마침내 중동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까지 옮아붙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들에게 보안군이 총격을 가해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고 수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시리아의 독재 체제가 워낙 굳건해 시리아 시민혁명의 성공 가능성은 속단하기 힘들다. ○ 낙서에서 촉발된 시위
이번 시리아 반정부 시위는 초등학생들의 낙서라는 아주 단순한 요인에서 촉발됐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120km 떨어져 있는 시리아 남부 농업도시 다라 시에서 초등학생들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훼손하고 벽에 정권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낙서를 쓴 것. 어린 학생들은 평소 범아랍권 위성TV와 인터넷 등에서 봐 온 이웃 국가들의 시위 구호를 흉내 낸 것이다. 하지만 비밀경찰은 초등학생 15명을 색출해 18일 체포했다. 그러자 부모들이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웃 주민들도 가담하면서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시위대는 18일부터 민주화 개혁과 부패 혐의를 받는 파이잘 칼툼 다라 주지사의 사임을 요구하며 오마리 사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당국은 보안군을 급파해 실탄과 물대포, 최루탄 등을 쏘면서 시위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5명 이상이 사망했다. 보안군은 희생자 장례식이 열린 23일 실탄을 쏘며 사원을 다시 공격했다. 시리아 정부는 이 과정에서 시위대 10명이 숨졌다고 24일 밝혔지만 목격자들은 보안군의 무차별 난사로 100∼150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사망자 중에는 11세 소녀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온 의사도 포함돼 있었다. 24일 시위대는 사망자들의 관을 메고 나와 ‘순교자 장례식’을 치르면서 경찰과 대치했다. 전날까지 수천 명이던 시위대는 이날 궂은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2만 명으로 늘었다. 다라 시의 인구는 7만5000명이다.
현재 다라 시는 외부와 격리됐으며 전화통신도 끊긴 상태. 모든 도로에는 검문소가 설치돼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대테러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고 사우디아라비아 일간 ‘걸프뉴스’가 전했다.
○ 전국으로 확산 조짐
시위 발생 직후 시리아 정부는 강온 전략을 구사하면서 발 빠른 수습에 나섰다. 체포한 초등학생들을 나흘 만인 22일 풀어줬으며 정부 고위대표단을 파견해 일일이 학생들 집을 찾아가 사과도 했다. 23일에는 다라 주지사를 해임했다. 하지만 시위대의 요구가 점차 정치 경제적 문제로 이어지자 유혈 진압에 나섰다.
다라 시위는 25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가 이날을 다라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는 ‘순교자의 금요일’로 만들겠다고 선포했기 때문.
최근 2년간 시리아는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에 불과해 전국적으로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농업 비중이 큰 시리아에서 가뭄은 큰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시리아의 실업률은 30%에 이르며 2010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800달러이다. 이 나라 민주화 운동가들이 제보한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남부 사나메인 마을에서 수백 명,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수십 명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굳건한 독재 흔들릴까
41년째 부자세습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는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이 2000년 급사하자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가 이어받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 선거에서 97.2% 찬성을 얻었고 2007년 선거에도 97.6%의 지지를 받았다. 선거 때마다 100% 찬성률을 자랑하는 북한에는 못 미치지만 철저한 강압통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 150명 중 한 명이 비밀경찰인 ‘무카바라트’일 정도로 감시 시스템도 철저하다.
과거에도 시리아는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해 왔다. 1982년 하마 시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반란이 일어나자 도시를 봉쇄하고 2만여 명을 학살한 전례가 있다. 2004년 3월에도 쿠르드족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사회다.
다만 최근 들어 알아사드 대통령이 오랜 고립정책을 마감하고 서방 세계와 화해에 나서는 제스처를 보였다. 최근 들어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사용 가능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 나라 소수파인 시아파의 일종인 알라위파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24일 시리아 전역의 여행경보를 1단계(여행유의)에서 2단계(여행자제)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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