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난해 오키나와 여행 때 산 컵이에요. 저건 10년 전에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고….”
일본 미야기(宮城) 현 게센누마(氣仙沼) 시 부둣가에 살고 있는 가쓰쿠라 도시오 씨(70)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나마 건진 게 이것뿐”이라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1개월째 피난소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수시로 집에 들러 쓸 만한 물건을 찾아보지만 지진해일(쓰나미)이 할퀴고 간 집 안은 온통 진흙투성이다. 지난달 11일 대지진 당시 건물 3층 옥상으로 대피했던 그는 “바닷물이 역류하기 시작해 2층 건물까지 물이 차오르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며 “기름탱크와 수백 t짜리 배가 밀려와 건물에 쿵쿵 부딪칠 때는 ‘정말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다”며 몸서리쳤다.
게센누마는 일본 동부 산리쿠(三陸) 해안 항구도시 가운데 가장 큰 어시장이 있는 관광도시였다. 그러나 여관 호텔 음식점 등이 모두 부둣가에 몰려 있어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쓰나미가 닥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부둣가 도로 곳곳에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대형 선박들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항구는 온통 비릿한 생선 썩는 냄새로 조금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부둣가 어시장의 대형 냉장고 안에 보관돼 있던 생선들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9일에는 참치와 꽁치 30만 t을 90km 앞바다에 내버리기도 했다.
매일 자위대와 경찰 소방대원 수백 명이 동원돼 복구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기 상하수도 가스 등 생활 인프라 복구율은 20%도 채 안 된다. 건물 잔해를 밀어내 이제 겨우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군데군데 끊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게센누마는 대지진 당시 항구 입구에 있는 선박용 저유소의 기름탱크 21개가 유실돼 항구 일대가 불바다가 된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때 유출된 기름은 200L짜리 6만 드럼으로 사흘간 불에 탔다.
게센누마 시 재해복구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사토 겐이치(佐藤健一) 위기관리팀장은 복구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총체적인 악순환 때문”이라고 했다. 인프라를 정비하려면 일단 잔해물을 불도저로 밀어내야 하는데 건물 밑에 아직 시체가 있어 일일이 잔해를 들어내 시신 발굴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 지진으로 해안가의 지면이 0.7∼0.8m 내려앉아 만조 시에는 곳곳이 물에 잠기는 것도 문제다. 사토 팀장은 “한쪽에서 흙을 쌓아가면서 복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몇 배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난민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면 가설주택 공사도 시급하다. 하지만 주택을 지을 평지도, 자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높은 지대의 평지는 이미 학교나 관공서가 들어서 있어 택지개발과 다름없는 대규모 땅고르기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건물 잔해를 처리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번 쓰나미로 미야기 현 전체의 잔해 쓰레기는 1800만 t. 연간 쓰레기 발생량의 23배에 이른다. 23년 치 쓰레기가 쏟아진 셈이다. 이 때문에 게센누마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L짜리 플라스틱 물병에 어디서 나오는 물인지도 모르는 민물을 담아 나르던 한 65세 여성은 “건물 3층에 집이 있어 간신히 목숨과 집은 건졌지만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재택난민’이나 다름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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