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등급을 최고 수준인 7등급으로 상향 조정한 것에 각국이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사고등급 격상이 뒤늦은 조치라는 비판 속에 프랑스 러시아 등 원전 선진국들은 자국 원전산업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국 이익에 따라 평가가 180도 달라지는 이른바 ‘원전의 정치학’이다.
일본은 방사성 물질 누출량 등 ‘정황 증거’로 볼 때 7등급 상향 조정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같은 최악 등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등급 조정을 거부하다 결국 뒷북을 쳤다.
그러나 ‘원전의 평화적 이용 촉진’을 기치로 내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국장은 일본의 조치를 ‘원전 산업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라고 평가하고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경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국제적인 에너지 수요 확대, 지구온난화 및 불안정한 화석연료 가격의 대안은 원전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
프랑스와 러시아는 한술 더 떠 “일본의 조치는 과잉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스아톰은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의도”라고 했다. 현재 원전 32기를 가동하는 러시아는 2030년까지 추가로 40기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인도 불가리아 베트남에서도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전력의 8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 역시 원전 알레르기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세계 원전 산업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25년 동안 침체됐으나 최근 ‘원전 르네상스’를 맞았다. 60개국 이상이 원자로 신증설을 검토할 정도로 성장유망 산업이다.
한편 원전 사고등급에 이처럼 각국이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 것은 국익을 초월해 사고등급을 총괄하는 국제적인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며 IAEA의 권한 강화 논의도 힘을 얻고 있다. 지금처럼 사고 발생국이 사고등급을 매기는 대신 IAEA가 해당국에서 신속히 정보를 받아 판단을 내릴 권한을 부여하는 식으로 사고 대응책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