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킹 씨(오른쪽)의 사기행각에 속아 넘어간 스웨덴 출신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앞줄 왼쪽). 사진 출처 더 선
잉글랜드 프로축구 구단과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투자은행과 전 정보국 책임자를 감쪽같이 속이고 북한 수뇌부까지 끌어들인 희대의 사기 사건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19일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현란한 거짓말과 치밀한 이벤트로 런던의 한 투자은행을 망하게 하고 유명 축구팀을 속여 거액의 빚까지 지게 만든 이 사기꾼은 전직 보험사기범으로 2년간 복역까지 했던 러셀 킹이라는 인물.
자신을 노츠카운티 팀의 자문역이라고 소개한 킹 씨는 2009년 4월 멕시코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스웨덴 출신의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에게 접근해 팀에 수백만 파운드의 투자금이 들어오니 이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에릭손 감독은 그해 7월 이사를 맡았다.
2009년 10월 북한을 방문해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과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은 러셀 킹 씨. MBC 화면 캡처 1862년 창단한 노츠카운티 팀은 1992년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 진입하지 못한 4부 리그의 시골 클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불린다. 에릭손 감독은 18일 “하위리그 팀에 투자를 유치해 바닥부터 다진 뒤 프리미어리그에 복귀시킨다는 계획은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큰 실수였다”고 털어놓았다.
킹 씨는 또 자신이 바레인 왕가의 자금 수십억 달러의 관리 책임자라며 런던의 ‘퍼스트런던’ 투자은행을 꼬드겼다. 그는 에릭손 감독과 미심쩍어하는 은행 주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북한 정권까지 이용했다. 킹 씨는 2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지닌 스위스 원자재 기업 ‘스위스 코모더티 홀딩(SCH)’이 북한의 금, 석탄, 철 등 광산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갖고 있는데 개발권의 일부를 팔아 축구팀의 운영자금을 조달키로 했다고 속였다. 킹 씨는 실제로 2009년 10월 22일 에릭손 감독 등을 SCH 대표단의 일원으로 데리고 평양을 방문했고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들을 만수대 의사당에서 접견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킹 씨는 에릭손 감독의 눈앞에서 북한 측에 ‘주식’이라는 것을 건네기도 했다. 킹 씨는 에릭손 감독을 스카우트하면서 1100만 유로 상당의 SCH 주식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북한 개발권을 갖고 있지 않다. 킹 씨가 북한 지도부를 어떻게 꼬드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바레인 왕실의 자금 관리인이라는 말에 퍼스트런던의 자문역을 맡고 있던 전직 국방정보국장 존 워커 경도 꼼짝없이 당했다. 킹 씨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2008년에 이 은행의 지분 49%를 확보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바레인 당국은 “왕실은 킹과 어떤 재정적 관계도 없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퍼스트런던은 결국 자금난을 겪다가 지난해 870만 파운드의 빚과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노츠카운티 팀도 700만 파운드의 빚만 남았다.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깨달은 에릭손 감독은 지난해 4월 이사직에서 물러나 10월 2부 리그 레스터시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바레인에 있는 킹 씨는 BBC에 “노츠카운티나 퍼스트런던, SCH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자문을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킹 씨는 200만 파운드의 대출사기 건으로 고소를 당해 바레인에서 출국이 금지됐다.
영국 중대범죄청(SFO)은 “관련 정보를 모으고 있으며 조만간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BBC는 “북한 독점 개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에 정치인과 금융계가 속아 넘어갔다”면서 “사기꾼이 영국 유명인사들과 북한 정권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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