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친다는 토종 진돗개한테 주인을 바꿔 충성하라고 훈련시키는 건 무리였을까.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대한’(백구·암컷), ‘민국’(황구·수컷) 등 진돗개 두 마리를 지난해 10월부터 훈련시켰지만 경찰견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훈련을 맡아온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경찰견훈련센터의 더그 롤러 경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민국이가 똑똑하지만 기분에 따라 임무 수행도에 차이가 많이 난다”며 “반복 훈련시키면 새 주인 말도 잘 들을 줄 알았는데 진도가 너무 더뎠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지난달 이미 대한이를 집중력이 부족하다며 탈락시켰고 한 경찰관이 입양해 집에 데려갔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지난해 10월 전남대 ‘진돗개 세계 명견화 사업단’ 후원으로 전남 진도를 방문해 후보를 물색해 당시 생후 100일이 채 안 된 대한이와 민국이를 데려갔다. 미국 경찰이 경찰견 후보를 찾으려고 원산지를 방문한 건 모든 견종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진돗개를 마약 및 무기 수색견으로 쓸 계획이었다.
미국에서 경찰견은 ‘K-9(canine·갯과 동물) 경위’라 불리며 경찰관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경찰견을 태우고 다니는 순찰차가 있으며 배지도 있다. 신분증도 나온다. 대한이와 민국이가 훈련을 통과했다면 아시아 견종으로는 처음으로 이런 ‘대우’를 누릴 수 있었다.
경찰견 제도를 시작한 건 1859년 벨기에 경찰이었다. 그 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도 사냥개와 함께 야간 순찰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경찰견의 주요 임무는 위험이 닥쳤을 때 경관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후각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하거나 인명 구조 분야에서 활약하게 된 건 1899년 4월 22일 ‘독일셰퍼드협회’가 문을 열면서부터. 이 단체는 체계적인 경찰견 훈련법을 하나둘 개발해 나갔다.
롤러 경사는 “셰퍼드는 경찰견으로서의 자질을 이미 수없이 증명해 잘 훈련받은 최고 수준 셰퍼드 한 마리의 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805만 원)가 넘는다”며 “진돗개가 경찰견이 되려면 역시 눈에 보이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도군 진돗개사업소 오석일 박사는 “국내에서도 경찰견 훈련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다 자란 개라 품성이 쉽게 바뀌지 않아 계속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가 성공할 거라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평생 한 주인만 따른다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경찰견 등으로 훈련하려는 시도가 부족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며 “진돗개의 특장점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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