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조종사 그리고 혁신가… 오가 노리오 소니 前회장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5일 03시 00분


CD 개발… PS 돌풍… ‘소니 신화’ 창조

《 20세기 후반 ‘소니 왕국’을 일구었던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전 소니 회장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한때 세계의 가전·전자업계를 평정하며 철옹성 같은 선두를 달렸던 소니가 순식간에 삼성에 밀려 헤매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23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오가 전 회장의 생전 활동을 일일이 나열하기는 숨이 벅찰 정도다. 성공한 최고경영자이자 도쿄예술대 출신 성악가, 지휘자, 제트기 조종사, 그리고 콤팩트디스크(CD)의 표준규격을 만든 CD의 아버지…. 》
1980년대까지 일본의 가전업체에 머물렀던 소니를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키워낸 것도, ‘SONY’라는 브랜드 로고를 만든 것도 그였다.

오가 전 회장이 소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도쿄예술대 성악과 학생 시절. 당시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녹음기 음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을 계기로 이 회사 공동 창업주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와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 입사했다. 입사 첫해인 1959년 부장으로, 1964년에는 임원으로 발탁 승진했다.

오가 전 회장은 1982∼1995년, 1996∼2000년 잇달아 소니의 사장과 회장을 지내며 제2의 창업에 비견하는 대대적인 혁신을 주도했다. 특히 사장 취임 후 미국 컬럼비아영화사와 CBS레코드사를 인수해 하드웨어(가전)와 소프트웨어(영화 음반)를 두 축으로 하는 소니의 성장엔진을 만들었다. 컬럼비아영화사 인수 금액은 당시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사상 최고액인 34억 달러로 “소니가 미국의 영혼을 샀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1994년에는 가정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PS)’ 개발을 주도해 세계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확신에 찬 결단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레코드를 대신하는 음악 미디어 시대가 반드시 온다”는 신념으로 1982년 네덜란드 가전기업 필립스와 CD를 개발해 아날로그레코드판(LP)이 주도하던 세계 음반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 당시 세계 기업들이 CD 기술의 표준규격을 놓고 경쟁을 벌였지만 오가 전 회장은 “CD의 녹음시간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며 재생시간 75분짜리 CD규격을 만들었다. 이것이 곧 CD규격의 표준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소니는 오가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고객의 심금을 울리는 상품 개발’이라는 오가 전 회장의 경영이념과 달리 세계가 주목할 만한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또 한때 소프트웨어를 버리고 전통가전업체로 회귀하는 듯했다가 애플과 경쟁이 심해지면서 소프트웨어에 다시 초점을 두는 등 갈지자 걸음을 걸었다.

오가 전 회장은 은퇴 후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도쿄필)과 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등 음악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2003년에 퇴직금 16억 엔을 기부해 나가노(長野) 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 있는 장기요양 시설에 음악홀을 짓기도 했다. 다음 달 4일에는 이곳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이재민을 지원하기 위한 도쿄필의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지병이 악화돼 결국 숨을 거뒀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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