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빈라덴 끝까지 찾아내 응징한 다음 날 첫 행사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4일 03시 00분


전사자 2人유족에게 명예의 훈장 직접 추서…
한국전 참전용사의 넋 ‘끝까지 챙겼다’

“오늘은 미국에 좋은 날이라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 미국은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이 죽었기 때문에 세상은 안전해졌고 더 좋은 곳이 됐습니다. 최고사령관으로서 제복을 입은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 벌어진 전쟁에서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2일 낮 12시 8분(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라덴 사살 후 처음으로 가진 공식행사는 60년 전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 2명에 대한 미군 최고 영예의 무공훈장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 수여식이었다. 명예훈장은 1861년 의회가 훈장 제정을 승인한 후 지금까지 3400여 명이 받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3명에게만 이 훈장을 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보고를 받은 데 이어 선임고문들과 회의를 마친 뒤 부인 미셸 여사와 함께 바로 이스트룸에 들어왔다. 6·25전쟁 참전용사 2명의 유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트룸은 유가족과 군 지도부 및 초청 인사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 차기 합참의장으로 유력한 제임스 카트라이트 합참 부의장 등 군 지휘부도 참석했다. 또 여러 연방의원도 자리를 함께해 60년 전 6·25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명예훈장을 받은 넋들은 하와이 출신의 앤서니 카호오하노하노 일병과 뉴저지 주 출신인 헨리 스벨라 일병(이상 당시 계급).

▶본보 4월 15일자 A27면 참조
A27면 ‘다부동 전투’ 현장서 첫 한미합동 유해 발굴


“두 병사는 각각 19세와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희생을 했습니다. 유가족의 마음에 이들은 항상 젊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미국이 수여할 수 있는 최고 훈장인 ‘명예의 훈장’을 이들의 가슴에 달아줄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이들 유가족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입니다.”

카호오하노하노 일병은 1951년 9월 7사단 17여단 소속으로 전투 중 전사했다.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끝까지 남아 총탄과 수류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가 나중에는 육박전을 하면서 싸웠지만 숨졌다. 그의 영웅적인 희생정신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분대원들이 반격해 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대신해 훈장을 받은 조카 조지 씨를 꼭 부둥켜안았다.

스벨라 일병은 1952년 6월 12일 7사단 32여단 소속으로 분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적진에서 날아온 수류탄에 몸을 던져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헨리의 시체는 복원되지 못했다”며 “유가족들에게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위로했다. 그를 대신해 훈장을 받은 여동생 도로시 매슈스 씨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울먹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인을 위해 박수를 보내자고 분위기를 잡았고 참석자들의 기립박수 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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