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사살될때 빈라덴 무장안해”… 백악관 하루만에 번복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5일 03시 00분


3일 오후(현지 시간)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특별히 발표할 내용이 없다”며 곧바로 질의응답에 들어가자고 했다. 기자들은 즉각 미군 특수부대의 군사작전 당시 오사마 빈라덴이 무장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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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 대변인은 국방부가 제공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료라며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빈라덴이 있던 3층 방에서 한 여인이… 아니 빈라덴의 부인이 특수부대원에게 돌진해 왔다.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고 난 뒤 빈라덴이 총을 맞고 사살됐다. 그는 무장을 하지 않았다.”

전날인 2일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빈라덴의 최후 순간을 설명하면서 “빈라덴이 특수부대 요원과 교전했다. 총알을 발사했는지는 솔직히 모른다”고 말했다.

상황실에서 40분간의 군사작전을 생생히 지켜봤던 그는 “여성을 앞세워 인간방패로 사용하면서 뒤로 숨었다”며 빈라덴의 비겁함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 “빈라덴, 아내 인간방패 삼은건지 아닌지는…” ▼
“돌진해온 아내, 총맞아 부상”… 현장 동영상-사진 공개 검토


하지만 카니 대변인은 빈라덴의 무장저항과 여성을 인간방패로 사용했다는 두 가지 중요한 팩트를 모두 수정했다. 이어 총도 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저항을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카니 대변인은 “작전이 이뤄지는 중간에 무장 요원들의 지속적인 저항이 있었다. 빈라덴이 무장한 것은 아니지만 저항할 때 반드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백악관이 전날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틀리게 발표한 것은 10년 가까이 진행해 온 미국의 ‘공적(公敵) 1호’ 사살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흥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2001년 9월 3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의 주범을 단죄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작전에 참여했던 특수부대 요원들을 상대로 한 정확한 보고 청취와 정보 확인 과정 등을 거치지 않은 채 서둘러 발표하다 빚어진 실수라는 것. 인간방패에 대해서 카니 대변인은 “1층에서 교전 중에 사망한 여성이 있었는데 (브레넌 보좌관이) 그 여성과 혼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빈라덴의 부인은 현재 부상을 치료한 뒤 파키스탄 당국에 붙잡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백악관의 잘못 시인이 미국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쉬쉬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정보 사안이지만 깨끗하게 당국자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노력을 보였다는 점에서다.

백악관은 “현재 밝혀진 사실 이외에 추가로 내용이 공개되는 즉시 미국민에게 상세한 상황을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백악관은 빈라덴 사살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의 공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당국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빈라덴의 시신과 현장 사진을 공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시점엔가 사진들이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승리감에서 흥분해 사실을 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 행정부는 2003년 4월 이라크군과 교전 중에 생포됐던 미군 포로인 제시카 린치 일병의 구출작전을 설명하면서 린치 일병과 특수부대원의 영웅담을 소개했다. 하지만 4년 뒤 린치 일병은 “당시 설명과 달리 내 소총은 고장이 나 교전에 참가하지 못했고 부상도 총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고 있던 험비 차량이 뒤집혀 발생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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