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4일 결정했다. 작전임무가 완료된 뒤 3일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사진 공개 여부를 놓고 미국 외교안보팀 내에서도 논쟁이 치열했고 비공개 결정에 따른 파장도 커지고 있다. ○ “사진 공개는 폭력 선동 우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일 녹화한 CBS방송 ‘60분’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안면 인식 조사와 DNA 테스트 결과 빈라덴을 사살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사진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머리에 총격을 받은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다른 폭력을 선동하거나 선전의 수단으로 떠돌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진의 생생함을 감안하면 사진 공개가 국가안보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및 정보당국자들과의 협의 끝에 이번 결정이 이뤄졌다”며 “모두 동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빈라덴 사살작전을 진두지휘한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논의 과정에서 사진을 공개해 논란의 소지를 불식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죽음을 부인하려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빈라덴이 다시는 이 지구에서 걸어다니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즉각 찬반논쟁에 휩싸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대부분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웠던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공화)도 “해외주둔 미군의 안전을 고려하면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알카에다가 우리 군 지도자를 살해한 뒤 그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을 때 우리 국민이 보일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반면 공화당 대선주자로 꼽히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트위터에서 “미국을 파괴하려는 다른 이들에 대한 경고로 사진을 공개하라”며 “우유부단함은 안 된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켈리 에이요트 상원의원은 “음모론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공개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 군사작전 vs 경찰력 집행
빈라덴이 사살될 당시 비무장 상태였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미군이 파키스탄 내에서 벌인 이번 작전이 국제법에 저촉되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빈라덴 사살작전을 교전 중에 벌어진 전투행위로 본다면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시에는 적 전투원이 명백하게 항복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 사살행위는 적절하다는 것이 국제법의 주류적인 유권해석이다. 빈라덴은 명백한 전투원의 수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테러작전을 경찰의 치안유지 활동으로 간주할 경우 해석은 달라진다. 국제인권법은 ‘경찰력은 자신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용의자를 생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4일 상원 청문회에서 “빈라덴 사살은 국가 자위권 차원의 행동”이라면서 “이번 작전은 합법적이며 우리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홀더 장관은 “만약 빈라덴이 항복을 했거나 항복하려 했다면 그 의사를 받아들였겠지만 현장에서 항복의 징후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사살은 적절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3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한 강연에서 “빈라덴도 인간으로서 동정과 나아가 용서를 받을 만한 사람일 수 있지만 용서는 무엇이든 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뭔가 중대한 일이고 대응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면 대응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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