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력공급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가동을 멈춤에 따라 일본에서 ‘무더위 공포’가 커져가고 있다. 습한 무더위로 악명 높은 일본의 여름을 나기 위해서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에 깊이 의존해온 선진국 도시인들이 ‘전기 없는 폭염’을 어떻게 헤쳐 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가장 뜨겁고 가장 어두운 여름
지난해 일본은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무더위를 겪었다. 여름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1.6도나 높았다.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1600명으로 예년의 8배 이상에 이르렀다.
올여름 더위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기상청은 “올해 여름은 예년 평균기온을 훨씬 웃돌 것”이라며 “지난해만큼 덥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전력이다. 1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원전 54기 가운데 올여름 가동되는 원전은 12기에 불과하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6기 등 15기가 이미 가동을 멈췄고, 27기가 정기점검 중이거나 8월까지 정기점검이 계획돼 있다. 예정대로라면 이 가운데 7기는 재가동을 했어야 하지만 원전 사고로 운전 재개가 유보됐다.
원전의 80%에 가까운 42기가 전력생산을 못 하게 됨에 따라 도쿄 등 수도권에서는 최대 10%의 전력 부족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수도권과 동북 지역에 15% 절전 목표를 세웠다.
사상 최악의 무더위에 사상 최악의 전력부족 사태까지 겹치자 일본 환경성과 기상청은 지난달 말 열사병 방지 대책을 위한 긴급 세미나를 열었다. 운송업체와 유통업체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비업계도 절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쿄에서 가장 큰 지하철 운영회사인 도쿄메트로는 올여름 차내 냉방 설정온도를 26도에서 28도로 2도 높였다. 역내 플랫폼은 31도로 맞췄다. 냉방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 일본 대형 유통체인점인 이온과 마루에쓰 등 소매업체들은 도쿄 등 수도권 점포의 냉방 설정온도를 기존 27∼28도에서 30도로 올렸고 조명은 70% 줄이기로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위를 식혀 줄 물마저 공급 차질이 예상된다. 수도는 물을 정화하고 송수를 위해 압력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전력소모량이 만만치 않다. 수도사업에 필요한 전력이 일본 내 전체 전력수요의 1%다. 도쿄수도국은 “물 사용량이 예년 수준을 넘어가면 제한급수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 재택근무, 업무시간 변경…해외 임시 피난
일반 가정집보다 전력사용 제한이 엄격히 적용되는 기업들은 재택근무나 근무시간 조정 등 비상 근무체제를 마련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본사 직원 2만 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인력을 최소한으로 줄여 사무실 냉방 등 전력수요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여름에 평일 이틀을 쉬는 대신 주말에 근무하는 근무제를 도입했다. 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하는 자체 서머타임을 고려 중인 기업도 늘고 있다.
무더위와 방사선 피폭 위험을 피해 여름 한철 아예 가족을 해외로 임시 피난시키려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에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가까운 송도신도시에 일본인의 전월세 임차 문의와 계약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의 한 은행은 일본 현지법인의 주주 또는 우량 고객들을 위해 한국 내 견본주택 방문 행사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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