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밀려 호주 명문대 도서관의 책들이 대거 ‘구조조정’된다. 시드니대의 중앙도서관인 ‘피셔도서관’이 소장 도서의 절반에 달하는 50만 권의 종이책과 논문들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 대학 책임사서 존 시프 씨는 12일자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먼지 테스트’를 거쳐(먼지가 쌓인 책 위주로) 폐기할 책을 고르겠다”고 밝혔다.
대학이 대대적인 책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는 도서관 내 종이책 수용 규모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 전자책과 전자논문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적 요구도 외면할 수 없었다. 시프 씨는 “이제 더는 하드커버 종이책은 필요하지 않게 됐다”며 “나날이 쌓여가는 책 때문에 천장까지 책꽂이가 설치되면서 건물 안전 기준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성공한 영국 이민자 출신 기업인으로 도서관을 후원해온 토머스 피셔의 이름을 딴 피셔도서관은 시드니대 캠퍼스 내 도서관 12곳 중 가장 큰 규모다. 책꽂이를 다 합치면 48km에 이른다.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 원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초판이 보관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 조치로 생긴 여유 공간에는 책상들과 커피자판기 등을 들여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또 대학은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시설 개선금 2700만 호주달러(약 310억 원)를 장서 구입 대신 에어컨 화장실 배선 승강기 등의 교체에 쓰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가 발표되자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대학 측이 다른 대안을 더 생각하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특히 지난 5년간 한 차례도 대출된 적이 없는 도서를 폐기 대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 대학 신디 매크리 교수(역사학)는 “먼지 쌓인 순서대로 폐기될 책을 정한다는 발상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대학 측은 폐기에 앞서 도서관 밖에 폐기될 책을 보관해둘 임시 보관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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