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칸 출품작 ‘아리랑’서 영화인 실명 비판 파문

“자본주의 유혹 빠진 그들… 내가 지금 죽이러 간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등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이 13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 영화 ‘아리랑’에서 실명으로 특정 영화인과 국내 영화계를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에 김 감독은 혼자 출연했으며 연출 촬영 각본도 혼자 했다.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 장르를 구분하기 힘든 이 영화에서 그는 일인다역으로 독백을 쏟아내며 장훈 감독을 욕설 섞어 비판했다. 장 감독은 김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를 연출했다.

이 영화에서 김 감독은 함께 신작 ‘풍산개’를 준비하다 그만둔 장 감독과 프로듀서 한 사람을 거론하며 “자본주의의 유혹 때문에 나를 배신하고 메이저 영화사와 ‘의형제’ 연출을 계약한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쇼박스가 투자와 배급을 맡은 ‘의형제’는 지난해 546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한국영화계 현실에 대해서도 독설을 쏟아냈다. 김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정부가 훈장을 줬다. 한국을 좋지 않게 그린 장면도 있는데, 영화는 보고 주는 건가. 삶의 아이러니다”라고 했다. “한국이란 사회는 많이 슬프고 아쉽다”며 영화계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 더 인정받아왔다.

또 김 감독은 “악마들이 영화를 못 만들게 한다” “배신자들 내가 지금 죽이러 간다”며 욕설과 함께 직설적인 발언을 토해냈다. 영화 끝부분에서 그는 직접 제작한 권총을 들고 세 장소를 찾아가며 밖에서 총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칸 현장에서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 감독은 “하고 싶은 말은 영화 속에 다 있다”고 말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아리랑’은 배급사 등이 정해지지 않아 국내 개봉이 불투명한 상태다.

영화 속 발언이 알려진 15일 트위터와 국내 포털사이트에는 김 감독과 장 감독이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트위터에는 관련기사를 옮겨 싣거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평단에서는 김 감독이 욕설과 함께 실명을 거론한 방식은 문제가 있지만 그의 발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지에서 영화를 본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실명을 거론한 점은 아쉽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영화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김 감독은 영화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 감독이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국내에서는 비주류로 분류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신강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대진대 연극영화학부 교수)은 “김 감독이 다소 ‘오버’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이저 영화사의 대자본이 독점한 영화계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판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장 감독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15일 밤 12시 현재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장 감독은 6·25전쟁을 소재로 한 ‘고지전’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