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총재의 어이없는 추락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스트로스칸, 성폭행 혐의로 체포돼… 佛대선 구도 흔들

14일 오후 4시 45분(현지 시간)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 파리행 에어프랑스23 여객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륙 10분 전 공항을 관할하는 뉴욕항만청 소속 형사 2명이 황급히 여객기 안으로 뛰어올랐다. 두 형사는 1등석 승객들 사이에 앉아 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62·사진)에게 다가갔다. “성폭행 혐의로 체포한다”는 고지와 함께 체포되는 순간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형사들의 지시를 순순히 따라 손에 수갑은 채워지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내년 5월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할 사회당 출신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스트로스칸 총재가 순식간에 성폭행 혐의 피의자로 급락한 것이다.

체포되기 3시간 45분 전인 오후 1시경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부근 44번가 소피텔 호텔 2806호. 하루 숙박요금 3000달러(약 328만 원)에 현관 침실 회의실 욕실 등 6개의 방과 방 사이에 복도까지 있는 최고급 스위트룸이다. 객실이 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소하러 들어간 호텔 여종업원(32)이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울먹이며 뛰쳐나왔다. “어떤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

15일 뉴욕경찰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객실에 들어갔던 여종업원은 샤워를 마치고 알몸인 채로 욕실 앞에 서 있던 스트로스칸 총재와 맞닥뜨렸다.
▼ “IMF 총재가 침대로 끌고가 성폭행하려 했다” ▼

당황한 여종업원이 방을 나오려는 순간 스트로스칸 총재가 그녀를 덮쳤다. 그는 거실과 화장실 사이 복도에서 그녀를 넘어뜨렸다. 뿌리치고 도망가려는 여종업원을 스위트룸 안쪽 침실로 끌고 가 침대에 넘어뜨렸다. 이어 여종업원의 속옷을 벗기려 했고 오럴섹스를 강요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종업원은 거세게 저항하며 그를 뿌리치고 침실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객실 안 복도에서 다시 붙잡혔다. 그는 여종업원을 욕실로 끌고 들어가 두 번째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종업원은 가까스로 성폭행을 피해 객실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호텔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응급구조(911) 전화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뉴욕경찰은 곧바로 호텔에 출동했지만 방은 이미 비어 있었다. 폴 브라운 뉴욕경찰 대변인은 “신고를 받은 경찰이 범행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스트로스칸 총재는 이미 현장을 떠난 뒤였다”며 “휴대전화 등 소지품이 방에 남아 있던 점으로 미뤄 매우 서둘러 떠난 듯했다”고 말했다. 그가 JFK공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신속하게 뉴욕항만청에 협조를 요청했고 출국 직전 그를 체포했다.

그는 뉴욕경찰에 인계돼 특별수사대의 밤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침실에서 스트로스칸 총재의 유전자(DNA) 등 법의학적 증거를 확보했다. 변호를 맡은 벤저민 브래프먼 변호사는 “스트로스칸 총재가 혐의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경찰청은 15일 오전 2시 15분 “스트로스칸 총재는 호텔 여종업원에 대한 성폭행 미수, 불법 감금, 범죄적 성행동 등 세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외교관 면책특권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주법에 따르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각각 최고 2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15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스트로스칸 총재의 회담은 취소됐다. 이번 사건은 IMF 지도부 공백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존 립스키 IMF 수석부총재가 8월까지인 임기 만료 후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3번 결혼… 부하직원과 스캔들… 여성편력이 결국 禍 불렀다 ▼

대선 레이스에서 압도적 1위를 달려온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미수사건은 사회당 경선 후보등록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벌어진 것이어서 프랑스 언론조차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현재까지는 그의 충동적인 여성 편력이 돌발적인 상황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 정가에서는 “DSK(스트로스칸)의 여성 관계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며 “각 당의 대선주자가 확정된 뒤 본격 레이스가 펼쳐지면 DSK의 여자 문제가 고구마줄기처럼 나와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트로스칸 총재가 세 번의 결혼 경력이 있으며 첫 결혼을 18세에 했다는 사실까지 항상 가십거리로 따라다녔다. 여론조사에서 독주를 해온 스트로스칸 총재가 계속 출마 선언을 미루는 것이 사실은 ‘여자와 재산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회당 관계자들은 “집권당의 흑색선전으로 전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치부하곤 했다.

성의학전문가 및 심리학자들도 스트로스칸 총재의 범죄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라는 반응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구를 한순간에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너무 해괴한 방법이라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표창원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성폭력과 성추행은 특별한 심리보다는 충동이나 격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성적 충동을 해소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다. ‘숫제 콜걸을 부르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위치에 있으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일로 3년 전 스트로스칸 총재와 관련된 스캔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8년 IMF의 부하직원으로 아프리카지국 책임자였던 헝가리 출신 피로스카 나기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IMF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스트로스칸 총재는 조사반의 지적에 따라 “판단 실수였다”고 공개 사과하는 절차를 가졌고 사태는 마무리됐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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