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바리 재생’ 각오 스즈키 나오미치 유바리 시장이 자신의 이름과 ‘유바리 재생’이라고 쓰인 대형 글씨판 앞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대형 글씨판은 시장 당선 기념으로 지지자들이 선물한 것이다. 유바리(홋카이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여기부터 유바리(夕張)’란 이정표를 지나자 도로 양옆으로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졌다. ‘명품 멜론’으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소도시. 비닐하우스가 뜸해지자 가게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거리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번화가라는 시청 주변도 활력이 없긴 마찬가지. 일본 유일의 재정파탄 도시 유바리. 그곳에서 지난달 일본 전국 최연소 시장이 탄생했다.
선망의 대상인 도쿄 도 공무원을 박차고 800km 떨어진 낯선 시골 시장직에 도전한 30세 남자와 그 ‘외지인’을 선뜻 시장으로 뽑은 마을의 사연이 궁금했다.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신임 시장을 13일 시장실에서 만났다.
―당선 후 벌써 20일이 지났다.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실은 내일 결혼한다. 동아일보(4월 26일자)에 난 사진 중에 오른쪽이 배우자다. 너무 바빠서 식은 나중에 올리고 혼인신고 등 간단한 것만 할 생각이다. 아직 신혼집도 구하지 못해 걱정이다.”
―시장 관사가 없나.
“부도난 시에 관사가 어디 있겠나. 차량도, 판공비도 없다. 친구에게서 산 중고 경차를 몰고 있다. 그동안 시청 옆 시영주택에 살면서 선거를 치렀지만, 시장 월급이 시영주택 입주 기준을 살짝 넘어 비워줘야 한다. 마음 같아선 시장 집무실에 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집무실보다 나은 집은 구하기 힘들 것 같은데….”
33m²(약 10평) 남짓의 집무실은 책상 하나와 7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용 소파가 전부였다.
―시장 월급은 얼만가.
“25만9000엔(약 349만5000원)이다. 직원들 평균보다 낮다. 책임과 권한이 가장 큰 자리이기 때문에 재정파탄의 피해 또한 가장 많이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 도쿄 도 공무원 시절보다 연봉이 200만 엔 정도 줄었다. 원래 월급 80여만 엔에다 호화 관사가 있었다는데, 2007년 파산 후 이렇게 됐다.”
유바리는 한때 잘나가던 탄광도시였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1990년대 이후 재정이 급속히 나빠졌다. 무리하게 관광사업을 벌이다 거액의 빚을 떠안고 2007년 파산했다. 세금과 공공요금을 올리는 대신 행정서비스를 줄이고 학교도 통폐합했다. 주민들이 하나둘 고향을 등져 한때 10만 명을 넘던 인구는 10분의 1 수준인 1만800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왜 시장선거에 나섰나.
“출마를 위해 도쿄 도에 사표를 내니 주위에선 다들 ‘바보 아니냐’며 말리더라. 전직 국회의원과 건설그룹 회장 등 쟁쟁한 후보들이 출마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데다 고향도 아니고 월급 등 대우도 안 좋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2년 2개월 동안 유바리 행정지원팀으로 파견 근무하면서 청춘을 불사른 곳이다. 주민들이 찾아와 ‘시장선거에 나서달라’고 하는데, 외면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더라. 인생을 걸고 도전하고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려운 일 앞에서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데, 젊은 세대에게 도전정신과 꿈을 주고 싶었다. 최악의 상황일수록 열심히 하면 더 빛나는 것 아니냐.”
―유바리를 부흥시킬 자신이 있나.
“유바리는 연간 세수입 9억 엔에 빚은 322억 엔이다. 사실 부흥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유바리는 가장 돈이 없고, 65세 이상 인구가 44%로 가장 고령화됐고, 최연소 시장이 있는 등 일본 자치단체 신기록을 3개나 갖고 있다. 이런 유바리를 살리기 위해선 젊은 사람들이 활기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를 뽑아준 것 아니겠나. 도쿄 도 공무원 경험을 살려 대도시와 연계해서 살길을 찾아보겠다. 도쿄 시민들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숙박시설, 도쿄의 재해 대비 기능 일부 이전, 대도시의 인터넷서버 기지 건설 등 찾아보면 길이 있다고 본다.”
―오면서 보니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들더라. 도시가 활력이 없던데….
“사람도 경제도 다 침체돼 있다. 이럴수록 열심히 해서 뭐든 이룬다면 더 빛날 것이다. 전성기 때 인구의 90%가 떠났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남아있는 주민은 유바리 사랑이 지극한 사람들이다. 시장선거 투표율도 82%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길을 제시하면 주민들이 적극 협력할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공무원 사표를 내고 여기 왔고, 배우자도 유치원 교사를 그만뒀다. 더 물러설 곳도 없다. 유바리에서 인생 승부를 보겠다.”
사실 그의 청춘은 역경과 도전 그 자체다. 고교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이삿짐센터, 술집, 건설잡부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교 졸업 후엔 도쿄 도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명문대 출신들 틈에서 3등으로 합격. 이후 호세이(法政)대 야간부를 다니며 지방자치를 전공했다. 야간수업이 끝나면 오후 11시까지 복싱 동아리에서 땀을 흘렸다. 복싱 주장까지 맡았다. 2008년 평생 처음 유바리에 온 뒤로는 ‘유바리 멜론 팝콘’을 고안해 인기 상품으로 만들었고 돈이 없어 중단했던 지역축제를 부활시켰다. 주민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지역단체 8곳에 가입한 그는 유바리 재생 프로그램에 시민 목소리를 담기 위해 1600가구 이상을 발로 뛰며 설문조사를 했다. 그렇게 얻은 조사결과는 그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중앙정부의 ‘유바리 재정계획’에 상당수 반영됐다.
―파견 근무하는 동안 상사로 모셨던 시청 직원이 많을 텐데 부담스럽지 않나.
“도쿄 도 공무원 경력 11년인 나보다 훨씬 선배들이 많다. 그러나 ‘잔뜩 가라앉은 유바리를 되살리고 재정파탄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깨 달라’는 주민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공무원 의식도 바꿔야 한다. 반발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 기업은 다 하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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