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를 범죄인 취급” 佛 부글부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佛선 포토라인 상상도 못해”… 양국 감정대립 확산 조짐

‘수갑을 찬 초췌한 모습의 사진이 연일 신문 1면에 실리고, 보석 기각에 독방 수감까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바닥 모를 추락을 지켜보는 프랑스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국제기구 대표를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

16일 뉴욕 법정에 출두한 스트로스칸 총재가 양손에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등장해 사진 세례를 받는 장면이 공개되자 프랑스의 한 전직 관료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사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며 “프랑스가 미국과 같은 사법제도를 갖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큰 사안일 경우 용의자의 사진 공개와 포토라인 제도가 관례화돼 있지만 프랑스에는 포토라인 제도 자체가 없다. 프랑스 법조계 일각에선 “만약 프랑스에서 미국 거물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이 벌어졌으면 미국에 돌려보내 재판받게 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미국과 프랑스 간에는 범죄인 인도 협정이 없다.

17일 LCI, BFM 등 프랑스 뉴스전문방송이 인터뷰한 시민들은 대부분 “이제 재판이 시작됐을 뿐인데 미국 언론은 범죄인으로 거의 단정하고 있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물리치료사 뒤트루 씨는 “스트로스칸이 국가적 망신을 시켰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정치인과 권력에 유달리 관대한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와 인식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사법기관은 범법 행위를 한 사람은 신분 고하에 관계없이 무조건 수갑을 채우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프랑스인이 적지 않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놓고 미국과 프랑스가 마찰을 빚자 일부 미국인이 감자튀김을 뜻하는 ‘프렌치프라이(French fry)’에서 프렌치를 프리덤(Freedom·자유)으로 바꿔 부른 이래 잠잠하던 양국 간 감정싸움이 이번 사건으로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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