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코미디방송 타고 ‘사우디의 봄’ 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3일 03시 00분


금기 깨고 만담 통해 정치풍자, 젊은층 열광… 조회수 80만 넘어

“사우디아(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항공사의 별칭)는 왜 부회장이 29명이나 될까요? 딱히 일이 없으면 비행기 통로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치우는 거라도 맡기면 좋을 텐데.”

여성 운전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이 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 최근 은근슬쩍 금기를 넘나드는 코미디 인터넷방송이 등장해 국민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온 더 플라이(On the fly)’. ‘on the fly’는 ‘슬그머니’ ‘대충 상황 봐서’란 뜻이며, 방송편집 전문용어이기도 하다. 이 쇼는 출연자들이 만담을 주고받는 스탠딩 코미디다. 지상파 방송에선 불가능한 서구 댄스음악을 틀고 나이트클럽 조명도 쏘아댄다. 자국 방송윤리법을 피하려 사막 텐트에서 촬영하고, 유튜브로만 방영한다.

사우디 사회로선 제작 및 출연진부터 충격적이다. 얼굴은 가렸지만 여성이 남성MC와 함께 출연한다. 구성작가도 여성이 상당수다. 가족이 아닌 남녀가 한 장소에서 같이 일할 수 없는 이슬람 율법을 적용한다면 채찍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내용도 아슬아슬하다. 우회적이긴 해도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놀림감으로 삼는다. 왕족이 소유한 국영기업도 조롱거리다. 자주 과잉폭력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경찰에겐 “(곤봉 대신) 손톱깎이를 지급하라”며 비꼬았다. 이슬람 민주화 혁명을 다루지 않는 공영방송을 유명 TV쇼에 빗대 ‘아랍 갓 탤런트’라 불렀다.

뉴욕타임스는 “온 더 플라이의 성공은 작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우디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제작진은 거의가 20대다. 해외 유학파가 많아 외국 문화에 익숙해 정치 사회 이슈를 개그 소재로 다루는 데 꺼림이 없다. 사우디 인구의 약 70%가 30세 이하인 점도 작용했다. 애청자인 핫산 후세인 씨(27)는 “인터넷에 능숙하고 통제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본다”며 “기성세대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 말했다.

에피소드별 최고 조회수 80만 건이 넘는 인기를 자랑하지만 왕족을 직접 비난하는 일은 절대 없다. 꾸란이나 율법, 성직자도 문제 삼지 않는다. 방방 날뛰다가도 신실한 이슬람 신도라는 건 꼭 언급한다. 성역은 건들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내버려둔단 평가도 있다. 제작자 파하드 알부타이리 씨(26)는 “사우디인의, 사우디인에 의한, 사우디인을 위한 방송”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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