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콜롬보’ 배우 피터 포크 별세… 목소리 연기했던 배한성 씨의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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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7일 03시 00분


“코맹맹이 소리… 허술함속 숨은 명석함… 굿바이, 내 생애 최고의 캐릭터 콜롬보”

《 구겨진 트렌치코트와 코맹맹이 소리로 유명한 ‘형사 콜롬보’ 피터 포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AP통신 등 미국 언론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피터 포크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숨졌다고 24일 전했다. 1971년 미국 NBC방송의 시리즈로 시작된 ‘형사 콜롬보’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를 누린 추리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힌다. 피터 포크는 범인의 알리바이와 범죄 방법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콜롬보를 연기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역할로 에미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다. ‘형사 콜롬보’는 한국을 포함한 26개 국가에서 방영됐다. 피터 포크의 별세는 성우 배한성 씨(65·사진)에게 한층 특별한 감회로 다가왔다. 1970, 80년대 ‘형사 콜롬보’가 국내에서 방영됐을 때 그가 콜롬보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기 때문이다. 》
배 씨는 26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눈썹을 찡그리는 것까지 세밀하게 분석한 후 더빙을 했다. 그래서 그 캐릭터나 배우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피터 포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하다. 가까이 있으면 문상을 가서 절이라도 깊숙이 하고 싶다”고 애석함을 표현했다.

○ “정의로운 마이너리티를 대변”


원래 콜롬보 역할을 맡은 성우는 고(故) 최응찬 씨였다. 최 씨가 지병으로 쓰러진 후 배 씨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는데 이후 ‘형사 콜롬보’ 하면 피터 포크의 독특한 외모와 함께 배 씨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콜롬보 대 배롬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배 씨는 “콜롬보는 맥가이버, 가제트 형사와 함께 내 생애 최고의 캐릭터”라고 했다. “콜롬보는 항상 허름한 옷차림에 다소 얼빠진 듯한 표정을 하고 독특한 코맹맹이 소리를 냅니다. 마이너리티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죠. 반대로 이 드라마의 범죄자들은 기득권자입니다. 가진 것도 많은 이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더욱 악랄하고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죠. 하찮게 보이던 마이너리티 콜롬보가 결국 명쾌한 논리와 완벽한 수사를 통해 범죄자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쾌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 씨에게 콜롬보는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허술한 듯하면서도 숨겨진 명석함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서너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피터 포크의 특징을 닮으려고 애쓰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콜롬보를 만들어내려고 애썼다고 회상했다.

“피터 포크는 형사 콜롬보를 위해 태어난 배우입니다. 의안인 한쪽 눈마저도 콜롬보라는 역할에 잘 맞아떨어졌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콜롬보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보니 다른 역할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번도 만나거나 전화 연락을 해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면 e메일이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회고록 제목도 ‘한 가지만 더요’


텁수룩한 머리에 허름한 트렌치코트는 피터 포크가 연기한 형사 콜롬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형사 콜롬보’는 1971년 미국 NBC가 방송한 이후 30년 넘게 26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DB
텁수룩한 머리에 허름한 트렌치코트는 피터 포크가 연기한 형사 콜롬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형사 콜롬보’는 1971년 미국 NBC가 방송한 이후 30년 넘게 26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DB
1927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피터 포크는 세 살 때 눈 부위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한쪽 눈을 의안에 의지해 살았다. 1958년 ‘크래프트 서스펜스 시어터’로 데뷔한 뒤 드라마 ‘웬 에인절스 컴 투 타운’(2004년), 영화 ‘아메리칸 카우슬립’(2009년) 등 숱한 작품에서 팬들을 웃기고 울렸다.

그는 1967년 빙 크로스비가 거절한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배우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는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나’를 두고 범인과 두뇌 게임을 벌여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력한 용의자와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돌아서려는 찰나 그의 입에서 “한 가지만 더요(Just one more thing)”라는 대사가 흘러나오면 시청자들은 그가 뭔가 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했다.

“한 가지만 더요”라는 명대사는 그가 2006년 발표한 회고록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2007년 치과 치료 이후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취나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콜롬보’라는 캐릭터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자신이 ‘형사 콜롬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세상을 떠났지만 팬들은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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