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총선, 탁신 여동생이 이끄는 야당 압승 이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5일 03시 00분


공약이행엔 4년치 예산도 부족… 탁신후광 앞세운 ‘포퓰리즘 덫’

태국 총선이 제1야당 푸어타이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잉락 친나왓 총리 후보(44)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수많은 예산이 들어갈 각종 선심성 공약을 이행하려면 정부 곳간을 모두 털어도 부족하다. 또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이라는 후광에 가려진 그의 정치적 역량도 검증 대상이다.

○ 포퓰리즘과 이미지 정치의 혼재

초등학교 입학생 전원에게 태블릿PC 지급, 최저임금 40% 인상 등 푸어타이당의 13개 공약을 이행하려면 태국 정부 1년 예산 전액을 꼬박 4년간 퍼부어도 부족하다.

4일 동아일보가 태국 문제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푸어타이당의 총선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1조8500억 밧(약 64조6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태국 정부의 1년 예산은 4000억∼4500억 밧. 태국 총선에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렸다는 얘기도 여기에서 나온다.

푸어타이당의 승리는 금력(金力)과 포퓰리즘이 현실정치에서 융합돼 승리를 거두는 씁쓸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 당의 실질적 지도자는 통신 재벌 출신인 탁신 전 총리다. 하지만 당의 지지기반은 도시빈민과 농민이다. 이번에도 서민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냈다.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을 내세운 이미지 정치도 선거의 판도를 가른 요인의 하나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회복이 더딘 태국 경제로 인해 유권자들이 탁신 전 총리 시절을 그리워하며 푸어타이당을 지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탁신 전 총리는 재벌이면서도 빈민층을 겨냥한 정책을 내세운 이른바 ‘강남 좌파’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는 값싼 건강보험 제공 등의 공약으로 2001년과 2005년 총선을 휩쓸었다. 당시 세계경제의 호황에 힘입은 측면도 있지만 태국 유권자들은 그때를 ‘좋았던 옛날’로 생각했고, 그런 기억이 잉락 총리 후보 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푸어타이당의 득표 전략은 선거를 맞아 세금을 내리겠다고 얘기하는 등 유권자들을 금전적으로 유혹한 포퓰리즘 선거”라며 “그러면서도 탁신 전 총리를 내세운 이미지 정치가 성공했기 때문에 이미지 정치와 포퓰리즘이 혼재된 선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잉락 총리 후보는 당분간 공약 이행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 풀어야 할 산적한 과제

총선 이후 태국 정국은 겉으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압승을 거둔 푸어타이당은 4일 4개 군소정당과의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푸어타이당은 이미 총선에서 500석 중 과반수인 265석을 확보해 단독정부를 꾸릴 수 있지만 정국 안정과 외연 확대를 위해 연정 구성을 선택했다. 이로써 잉락 연립정부는 전체 의석의 60%에 이르는 299석을 확보했다.

2006년 탁신 전 총리를 몰아낸 군부도 이날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며 쿠데타 가능성을 일축했다. 쁘라윗 웡수완 국방부 장관은 “당선된 정치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군부는 정치에 관여하거나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잉락 총리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오빠인 탁신 전 총리를 비롯해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 사범들의 사면을 약속했다. 공약에 따라 탁신계 정치인에 대한 대사면을 하거나 탁신 전 총리가 조기 귀국한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또 9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지난해 반정부 시위의 진상 규명도 ‘뜨거운 감자’다. 탁신 전 총리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유혈 진압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개헌 논란이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아피싯 웨차치와 정권이 들어선 뒤 영국으로 망명한 자이 웅파콘 전 태국 쭐랄롱꼰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보낸 e메일에서 “푸어타이당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며 “육군 참모총장이 초헌법적 권력으로 정치에 관여하도록 만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두바이에 망명 중인 탁신 전 총리는 “내가 고국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국민이 안정을 찾고 화해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며 “당초 60세에 은퇴하기로 했는데 나는 벌써 62세다. 다시 총리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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