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지난해 ‘노터치 정책(No touch policy·학생 체벌 금지)’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긴급 상황에선 교사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인 수준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11일 일선 학교에 공표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날 “교육부가 공립학교 2만1000여 곳에 52쪽 분량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며 “이번 지침은 이르면 9월부터 모든 교육 현장에서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거의 600쪽에 이르던 기존의 훈육 지침서를 단순화한 것으로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이러한 정책 추진을 천명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교사는 앞으로 학교 내에서 교사나 학생에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행동을 일삼는 학생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물리력’을 쓸 수 있다. 이전과 달리 학생이 동의하지 않아도 술이나 마약, 훔친 물건을 갖고 있는지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다. 또 교사에게 ‘악의적인(malicious)’ 행동이나 거짓말을 하는 학생은 정학, 퇴학은 물론이고 사법 처리도 가능하도록 했다.
영국 정부가 1980년대부터 지켜왔던 ‘노터치 정책’을 손보는 배경엔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내 폭력과 교사들의 권위 추락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현재 영국 초중고교에선 폭력에 연루돼 최소 정학 이상의 처벌을 받는 학생이 하루 평균 1000명에 이른다”며 “이는 지난해 평균 452명의 두 배를 넘는 수치”라고 전했다. 지난해 학생들의 폭력으로 병원 신세를 진 교사도 4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노터치 정책 때문에 학생들이 싸울 때조차 교사가 끼어들 수 없던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에 대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영국교사노조(NUT) 등은 “교권 회복의 단초를 마련했다”며 환영했다. 반면 영국학생권리연합(CRA) 청소년인권연합 등은 ‘역사의 후퇴’ ‘위험한 결정’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닉 기브 학교담당 장관은 “일선 학교에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일선 교육현장에서 어느 정도 허용되던 체벌을 1980년대부터 ‘학생 권리 신장’ 목표에 따라 엄격히 규제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논의 끝에 1998년 체벌 금지가 법으로 제정되며 어떤 경우라도 교사는 학생에게 손댈 수 없는 노터치 정책을 고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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