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르자이 가문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의 맹주 집안이다. 장남 하미드는 아프간 대통령이고 동생 아메드는 칸다하르 주의회 의장이다.
‘칸다하르의 왕’처럼 군림하던 아메드는 인근에서 멜론을 재배하던 청년 농부 사다르 무함마드를 눈여겨보다 심복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수년 동안 무함마드는 충성을 다해 아메드를 모셨다. 아메드는 그를 부하 200명을 거느리는 경찰 책임자로 중용했다. 자택 경호책임도 맡겼다. 무함마드는 미군, 영국군과 관련 정보를 교류해 탈레반 조직원 수백 명을 체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런 무함마드가 12일 아메드의 얼굴과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주군을 암살한 무함마드는 현장에서 별 저항 없이 경호원들의 총을 맞고 숨졌다. ‘순교’를 택한 자살폭탄 테러범을 연상케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아프간 당국은 무함마드가 탈레반이 심어놓은 암살자였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함마드가 탈레반이 오래전에 심어놓은 요원인지, 아니면 최근 탈레반에 합류한 변절자인지를 가리기 위해 당국이 고심하고 있다고 15일 보도했다. #2 아프간 보안군은 최근 신입요원을 충원했다. 그런데 4월 칸다하르의 교도소에서 땅굴을 파고 탈옥한 탈레반 죄수 470명 가운데 일부가 지원자에 포함돼 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경악했다. 탈옥한 탈레반들이 아프간 치안의 핵심 역할을 맡을 보안군으로 변신해 ‘침투’하려는 대담한 공작을 벌인 것이다. 미군의 도움으로 새로 도입한 생체정보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적발하기 힘들었을 공작이다.
홍콩 영화 ‘무간도’에는 범죄조직 ‘삼합회’를 보호하기 위해 18세에 경찰에 위장 투신해 경찰 간부로 성장하는 삼합회 조직원이 등장한다. 무간도에 나오는 삼합회 요원이자 홍콩 경찰 강력반장인 유건명(류더화·劉德華 분)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대공세에 밀려난 탈레반은 아프간 군과 경찰조직, 심지어 권력층의 측근 인사 등으로 숨어들어 암약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바꿨다. 이를 눈치 챈 아프간 정부와 군, 경찰은 조직에 침투한 탈레반 요원 색출에 골몰하고 있지만 가려내기가 쉽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탈레반의 위장 침투는 통상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진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이미 유년 시절에 파키스탄의 ‘지하드(성전) 학교’로 불리는 마드라사(이슬람 전사로 교육하는 곳)에 다녔다. 20여 년 전 지하드 전사로 교육받은 뒤 아프간에 돌아와 카르자이 가문을 노리고 침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앞서 5월에는 아프간 북부지역 경찰 총책임자 무함마드 다우드와 칸다하르 주의 경찰총수 칸 무함마드 무자히드가 위장 침투한 탈레반 요원들에게 암살됐다.
고위 인사들이 이처럼 침투한 암살자에게 당하는 일이 빈발하자 정재계 인사들은 심복과 경호팀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다. 아프간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을 정도다. 파우지아 코피 국회의원은 “그들이 아메드를 죽였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암살당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최근 경호원 10명을 교체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경호원조차 불신을 받는 상황이 되자 사설 경호업체가 뜨기 시작한 것도 아프간의 새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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