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제왕’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의 기세에 눌려온 영국,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이 해킹 스캔들을 기회로 머독 회장과 그의 미디어 제국에 맹폭을 퍼붓고 있다.
‘머독의 여인’으로 불려온 레베카 브룩스 뉴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머독 회장 소유인 다우존스의 CEO이자 미국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 발행인인 머독 회장의 52년 지기 레스 힌턴 씨도 사임했다. 브룩스 CEO는 17일 해킹과 부패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양 날개를 잃은 머독은 16일자 영국 주요 일간지에 전면 사과광고를 내고 “심각한 부정행위에 사과하며 개인들이 고통을 받은 데 대해 매우 죄송하다. 그 문제를 더 빨리 처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단순한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며 피해 보상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약속했다. 또 ‘경찰의 해킹 조사에 대한 협조와 도청 사건의 재발 방지’를 내용으로 하는 사과 광고 2탄도 내보낼 예정이다.
하지만 ‘뉴스오브더월드(NoW) 폐간→스카이뉴스 인수 포기→청문회 출석→핵심 측근 2인방 사임’이라는 강력한 조치에도 머독 회장을 향한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머독 몰아붙이기를 주도하고 있는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는 주간지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머독의 시장점유율을 줄이기 위해 언론사 소유 관련법을 초당적으로 협의해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머독은 영국 사회에 너무 큰 힘을 갖고 있다”며 “한 사람의 수중에 엄청난 힘이 주어지면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도 머독제국을 향해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칼럼니스트 조 노세라의 칼럼에서 “머독 회장이 (2007년) 인수한 이후 WSJ 기사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며 “WSJ가 머독의 보수적 시각을 전달하는 선전도구가 됐다”고 비판했다. NYT가 발행부수에서 WSJ에 뒤지고 WSJ가 뉴욕판을 만들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상대 신문을 이렇게 원색적으로 비판한 건 이례적이다. 칼럼은 “WSJ가 폭스화(Fox-ify)되고 있다”며 “정치를 강조하다 보니 경제 뉴스가 급격히 줄었으며 경제 뉴스의 수준이 놀랄 만큼 유치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청 사건 발발 후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던 WSJ가 15일 비겁하게 머독 인터뷰를 실었다”며 “인터뷰 내용은 머독 홍보담당자가 쓴 것 같았다”고 비난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17일 하원 문화·미디어·스포츠 위원장으로 최근 머독 회장과 NoW를 강하게 비판했던 보수당의 존 위팅데일 의원이 실은 힌턴 다우존스 발행인과 오랜 친구이고 브룩스 CEO와 저녁을 먹는가 하면 머독의 딸 엘리자베스와도 친밀한 사이라며 머독의 제국과 은밀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폭로했다. 가디언지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지방 관저로 머독 회장과 그의 언론사 간부들을 초청한 사례가 총 26건에 달하는데 브룩스 CEO와는 작년 6월, 8월, 12월 성탄절 때 연이어 만났고 지난해 11월엔 머독 회장 부부와 총리 관저에서 오찬을 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보도했다.
머독 회장에게 십자포화가 쏟아지는 것에 대해 그동안 머독 회장이 황색저널리즘을 앞세워 언론의 본연의 모습을 없애고 사기업화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져온 서구의 전통 엘리트 언론이 일제히 들고 일어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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