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요신문 뉴스오브더월드의 휴대전화 메시지 해킹 사건과 관련해 신문사를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이하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19일(이하 현지시각) "매우 부끄러운 일로 해킹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날 오후 2시30분 뉴스코프의 유럽 내 자회사 뉴스인터내셔널을 맡고 있는 아들 제임스 머독과 함께 영국 하원 문화 미디어 스포츠 위원회의 청문회에 나란히 출석해 "오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유감이지만 내 책임은 없다"=3시간에 걸쳐 진행된 청문회에서 머독은 유감을 표명하되, 해킹에 대한 자신의 개입 또는 사전 인지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뒤 "모든 전화 해킹 피해자들이 내가 얼마나 통렬하고 깊이 미안해하는지 알아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들의 분노를 전적으로 이해한다"면서 "그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머독 회장은 그러나 책임론을 거론하는 의원들의 추궁에는 "뉴스오브더월드는 뉴스코프 전체로 보면 1% 정도에 불과한 회사로 나는 전 세계에 5만3천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면서 "이번 파문에 대해 나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해킹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일부 직원들로부터 명백히 잘못된 보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또 5년전 처음 불거졌던 뉴스오브더월드 사건의 파장을 최근 토네이도급으로 격상시킨 실종 소녀 다울러의 휴대전화 해킹 사실을 "2주전에 처음 전해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섬뜩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머독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한 뉴스오브더월드의 9·11 희생자 유가족 해킹 의혹에 대해서는 "의혹을 입증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뉴스코프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나는 이 문제를 정리하기에 최적임자"라며 부인했다.
이어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신뢰했던 사람들이 나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불명예스럽게 행동했으며 회사와 나를 배신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머독은 뉴스오브더월드의 전 편집장 레베카 브룩스가 수년전 의회에서 경찰에 정보제공을 대가로 금품을 제공했다는 증언을 한 뒤로도 회사 차원에서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루퍼트 머독이 영국에서 40년 넘게 언론을 소유해오면서 의회 청문회에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머독의 부인인 웬디 덩이 머독의 뒷자리에 앉아 남편을 성원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를 방청하던 한 남성이 면도용 거품을 담은 1회용 종이 접시를 들고 머독에게 달려들면서 잠시 소동이 빚어졌다.
●신문, 경찰 관계자도 부인 일관=머독의 아들인 제임스 머독도 이날 아버지와 입을 맞춘 듯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는 "해킹 사건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면서도 "회사 간부들이 해킹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휴대전화 해킹이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사건에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머독 사단'의 영국 총책임자직에서 최근 물러난 레베카 브룩스 뉴스인터내셔널 전 최고경영자는 정보 취득을 위해 회사 측이 경찰에 금품을 제공한 일에 대해 승인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영국의 다른 언론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을 맡던 시절(2000~2003년) 사설탐정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의 행방을 파악하는 등의 "순전히 합법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뉴스오브더월드를 위해 해킹을 수행한 사설탐정 글렌 멀케어의 이름은 2006년 그가 체포됐을 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이날 머독 부자와 뉴스오브더월드 관계자들에게 기자들의 휴대전화 메시지 해킹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관련 사실을 알고 은폐를 기도했는지 등을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경찰 공보실에 머독 회사 출신 다수 포진"=아울러 하원 내무위원회는 이날별도로 폴 스티븐슨 전 런던경찰청장과 존 예이츠 치안감을 불러 뉴스오브더월드의 간부를 지낸 닐 윌리스를 경찰 홍보 자문관으로 채용하고 신문사 고위 인사들과 자주 만나는 등 유착 의혹을 추궁했다.
뉴스오브더월드 측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임한 스티븐슨 전 청장은 뉴스오브더월드가 휴대전화 해킹을 저지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스티븐슨 전 청장은 그러나 런던 경찰청 공보실의 직원 45명 중 10명은 이전에 뉴스인터내셔널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공개했다. 런던경찰청은 그동안 엄격한 법의 수호자로 명성이 높았지만 이번에 머독 측 언론 과의 유착 의혹으로 명예가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예이츠 전 치안감도 자신이 최근 사임하지 않았더라면 뉴스오브더월드가 범죄 피해자의 음성메일을 해킹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재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오브더월드가 정치인, 연예인은 물론 실종 소녀와 전사자 유족의 휴대전화까지 무분별하게 해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브룩스, 신문사와 유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폴 스티븐슨 런던경찰청장이 물러나고 뉴스코프의 위성방송 스카이 인수가 무산되는 등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경찰은 신문사 측의 해킹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폭로했다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 신문사의 전직 기자 션 호어(47)에 대해 부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일단 타살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호어가 알코올 중독과 과대망상 등을 겪어왔다는 주변 인물들의 말에 따라 자살 또는 단순 변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일 열리는 하원 총리와의 질의응답을 준비하기 위해 당초 일정을 앞당겨 귀국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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