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연쇄 테러]테러범 브레이비크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5일 03시 00분


“무슬림과 사는 건 재앙”…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1人 테러

노르웨이 연쇄 테러사건은 그동안 서방세계를 테러공포에 몰아넣었던 이슬람 근본주의자나 테러조직이 아니라 무슬림을 증오하고 다(多)문화를 배격해온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소행이었다.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범행을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다.

브레이비크는 올 1월 헤드마르크 지방의 시골마을 레나에서 ‘브레이비크 지오팜’이라는 이름의 농장을 설립했다. 오슬로에서 동북쪽으로 140km 떨어진 곳이었다. 농장에서는 주로 채소 멜론 감자 등이 재배됐다. 그의 행동이 수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5월경. 그는 재료 공급상에게 회사 이름으로 비료 6t가량을 주문했다. 재료 공급상에 따르면 농장 운영자에게 팔아본 적이 없는 많은 양이었다. 경찰은 그가 폭탄 재료인 비료를 합법적으로 사기 위해 농장을 설립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테러 며칠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자신의 생각을 올렸다. 페이스북에 보디빌딩과 중세의 비밀결사단 프리메이슨에 관심이 있다고 적었으며 “윈스턴 처칠, 클래식 음악, 막스 마누스(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한 노르웨이 영웅) 등을 동경한다”고 밝혔다. 범죄심리학자인 랜 스티븐 박사는 “사회에 대해 세심하게 분노를 조절할 줄 알며 오랫동안 테러를 계획해왔다”며 “충동적인 살해범의 심리와는 정반대”라고 분석했다.

그는 테러를 자행하기 6시간 전 페이스북 ‘친구’ 7000여 명에게 동영상을 보내 “내가 경찰관처럼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에 짜릿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이슬람 비판 성향의 사이트인 ‘도쿠멘트’에도 많은 글을 써왔다. 2009년 인터넷에 올린 글에는 그의 이름으로 “무슬림이 비무슬림과 평화롭게 사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그것은 비무슬림에게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해 적은 글에서는 노르웨이인과 젊은 이민자들 간 인종적인 긴장감을 묘사했다. 15세 때 본인의 의지로 개신교 세례를 받았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농담 같다. 목사들은 청바지를 입고 교회는 작은 쇼핑센터 같다”라고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브레이비크는 1999∼2007년 노르웨이의 최대 정당인 우익 진보당(FrP)에서 활동하다 탈퇴했다. 탈퇴 이유는 자신의 시각이 우익 진보당보다 더 극단적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인 그가 20대 후반부터 점점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2009년에는 스웨덴 네오 나치 인터넷 포럼인 ‘노르디스크’에 가입한 적도 있다.

오슬로 서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브레이비크는 한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의 아버지 옌스 브레이비크 씨는 “아들과는 1995년 이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며 “아들이 어렸을 때는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다른 사람들과 말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군대 제대 후에는 노르웨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공공연히 “사업을 하는 목적은 정치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학창 시절 친구는 브레이비크에 대해 “장신(183cm)에 똑똑했고 가끔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돌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취미는 사냥과 컴퓨터 게임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모던 워페어2’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전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된 것 외에 범죄 경력은 없었다. 사격클럽에 총기 두 정을 등록할 정도로 총을 좋아했다. 이웃들에 따르면 최근 군복을 즐겨 입었다. 노르웨이는 총기 소유가 합법화돼 있다. 국민 100명당 31.32정이 보급돼 있다. 미국은 100명당 88.82정이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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