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고속열차가 벼락에 맞아 멈춰섰는데 뒤의 열차가 이를 알지 못한 채 달려와 추돌하는 원시적 시스템 결함 사고로 24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속철의 핵심인 안전 시스템의 맹점을 드러낸 이 사고로 중국 정부가 굴기(굴起·우뚝 일어섬)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선전해온 고속철 신화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시련을 맞게 됐다.
○ 선행 열차 정지, 후행 열차는 몰라
중국 철도부 왕융핑(王勇平) 대변인은 24일 “사고 원인은 번개로 인한 설비고장으로 사고 원인을 정밀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는 23일 오후 8시 34분경 베이징(北京) 남역을 출발해 푸저우(福州)로 향하던 ‘D301호’ 고속열차가 동남부 저장(浙江) 성 원저우(溫州) 부근에 정차해 있던 항저우(杭州)발 푸저우 남역행 ‘D3115호’ 열차를 뒤에서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D3115호’가 번개로 동력을 잃고 멈춘 것을 시속 200km로 뒤따르던 ‘D301호’가 모른 것이다.
이 사고로 ‘D301호’ 열차의 앞부분인 1∼3번 객차 3량이 높이 15m의 고가철로 아래로 떨어졌고 4번 객차는 고가철로에 사다리처럼 약 90도로 걸렸다. ‘D3115호’의 맨 뒤 15, 16번 객차 등도 서로 겹치듯 뭉개졌다.
신화(新華)통신은 이 사고로 24일 밤 현재 43명이 사망하고 211명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망자 가운데 2명은 외국인으로 전해졌으나 한국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상자 중 일부가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열차 간격도 모른 채 질주하다 ‘꽝’… 중앙 제어시스템 먹통 ▼
○ 기본 안전시스템 작동 안 돼
중앙 자동 제어시스템은 고속철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열차 또는 설비가 번개에 맞았다고 열차가 멈춘 것이나 열차가 멈춘 사실을 시스템이 자동 감지해 후속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 중국에서는 비슷한 사고가 빈발했다. 10일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와 천둥번개로 전력선 이상이 발생해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가던 ‘G151호’ 고속열차가 산둥(山東) 성 취푸(曲埠) 근처에서 정차했다. 당시 철도 당국은 “전기 접촉 고장일 뿐 열차의 품질과는 관계가 전혀 없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또 지난달 30일 징후(京호·베이징∼상하이) 고속철이 개통된 후 잦은 고장으로 멈추고 이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중국 당국은 △개통 초기라 2, 3개월의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고장이지 사고가 아니며 △설비는 안전하다고 강변했다.
이번 사고 직전 고속철도 차량제작업체인 중국 베이처탕처(北車唐車) 소속의 한 전문가는 “시속 600km까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설계 및 시공속도가 시속 600km여서 현재 고속철의 운행 속도인 300km론 절대 탈선 등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상이변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설비 고장 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이런 식의 안이한 대처가 결국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초대형 강진에도 시속 300km로 달리는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에서는 ‘조기 지진 감지 시스템’으로 열차들이 자동 정차해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 중국 고속철 해외 진출에 타격
중국 고속철은 인공위성 항공모함 심해잠수정 등과 함께 중국의 부활을 상징해 왔다. 중국 고속철은 한국의 약 100배에 이르는 광대한 국토를 사통팔달로 연결하고 있다. 중국 고속철에는 운행노선, 운행속도, 발전속도 등에서 각각 세계 1위라는 영예가 붙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중국을 방문해 “중국 고속철 기술은 미국보다 10년 앞섰다”고 말했다. 중국에 널리 보도된 미국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중국인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중국은 라오스 카자흐스탄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고속철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한 언론은 세계 50여 개국이 중국의 고속철 기술과 건설 지원을 바라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이런 발전 전략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부에선 날선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인 차이쉰(財訊)망은 “안전을 자신했던 모든 말이 너무 우스워 거론하기조차 부끄럽게 돼 버렸다”고 일갈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철도 안전에 대한 긴급 정밀검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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