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를 뽑는 집권 민주당 대표선거를 3시간여 앞둔 29일 아침 한 방송사 뉴스프로그램. 방송 리포터가 도쿄 거리에서 시민을 상대로 총리후보 5명 사진을 제시하며 “누군지 아느냐”고 묻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날 새 총리로 확정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주당 신임 대표를 몰라보는 사람도 많았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민심은 철저하게 당심(黨心)에 짓밟혔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은 1차투표에서 3위에 그쳐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여론 지지도는 한 자릿수에 불과한 가이에다 반리(海江田萬里) 경제산업상과 노다 재무상이 1, 2위로 결선투표에 올랐다. 총리 선거가 민심과 상관없이 당내 계파 간 이해관계에 근거한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된 것.
‘노다 체제’는 이처럼 시작부터 국민의 외면 속에 출발했다. 국민들은 열띤 정책대결을 보고 싶었지만 선거전은 시종일관 계파 간 표 쟁탈전으로 진행됐다. ‘파벌정치의 본산’ 자민당에서조차 “나쁜 자민당 시절의 선거를 보는 것 같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였다. 국민과 여야가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을 대지진과 원전사고, 경제침체 등 산적한 문제를 ‘여론 지지율 4% 총리’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노다 총리의 최대 과제다. 안으로는 오자와파에, 밖으로는 참의원을 장악한 자민당 공명당에 손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120명을 거느린 민주당의 최대주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은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그가 적극 지지한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은 결선투표에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지난해 두 차례의 대표선거에 이은 3연패다.
그는 지난 1년 3개월 동안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철저한 ‘오자와 배제’에 따라 찬밥 신세였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당원자격 정지 조치를 당해 이번 선거에선 투표권마저 박탈당했다. 그는 이번에 ‘가이에다 총리’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부활을 위한 터를 닦은 후 내년 9월 다시 치러지는 대표선거에서 직접 총리 자리를 꿰찬다는 전략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노다 신임 총리도 기본적으로 반(反)오자와 노선이어서 오자와의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오자와는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각책임제하에서 계파의원 120명은 막강한 정치파워다. 노다 총리가 29일 당선소감으로 ‘노 사이드(No Side)’를 선언한 것도 오자와파를 끌어안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마에하라 전 외상은 분루를 삼켜야 했다. 모든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40∼5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당심은 그를 외면했다. ‘전략적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의원모임’ 회장으로 지한파인 그의 낙선은 한국으로선 안타까운 결과다.
마에하라는 이번 선거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노다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막판에 출마하자 “정치 도의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3월 재일한국인에게서 정치헌금 20여만 엔을 받아 외상에서 물러났던 그는 선거 직전에 “그것 말고도 외국인 헌금이 더 있다. 모두 59만 엔이다”고 밝혀 당 안팎의 불신을 자초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탄탄한 국민 지지를 확인했고 40대라는 ‘젊음’은 여전히 최대 자산이다. 2013년 8월 중의원 임기만료가 됐든 그 전에 국회 해산으로 총선을 하든, 아니면 내년 9월 민주당 대표선거가 치러지면 언제든 ‘국민 지지 마에하라’에 대한 기대는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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