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 씨(39)는 중국 지샹(吉祥)항공의 여자 부기장이다. 기자가 8월 30일 저녁 조 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비행을 막 마치고 트랙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날 오전 중국 당국은 8월 13일 상하이(上海) 훙차오(虹橋) 공항에서 일어난 ‘착륙 양보 거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지샹항공 소속 한국인 기장의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씨에게 당신이 문제의 기장이라는 글과 사진이 돌고 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제가요?”라며 황당해했다. 중국 정부가 비상착륙을 거부한 조종사의 면허를 취소했으며 기장의 국적은 한국이라고 밝히자 누리꾼들은 즉각 인육수색(人肉搜索)을 벌였다. 조 씨는 몇 년 전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항공기 조종사로 중국 매체에 소개된 적이 있다. 과거 자료를 뒤지던 중국 누리꾼들은 조 씨가 바로 문제의 조종사라고 지레 짐작하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진실을 가려 보도해야 할 언론도 누리꾼들의 광기어린 신상털기에 동참했다. 안후이(安徽) 성의 허페이(合肥)만보는 조 씨의 전신사진까지 인터넷에 올려놓고 “중국민항관리국이 지샹항공 사건 조사 결과에 따라 한국 국적 여성 기장인 조은정 씨의 면허를 박탈하기로 했다”고 설명까지 붙였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는 한국 국적이라고 밝혔을 뿐 이름은커녕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다음 날 조 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이 중국 땅에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힘겨워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 언론이 해당 사건의 당사자로 보도해버린 이상 이후에 어떤 예상치 못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당장 추석 전에 가능할 것으로 봤던 기장 승진 시험도 연기된 상태다.
조 씨는 29세 늦깎이로 파일럿에 도전했다. 나이 때문에 국내 조종훈련생 과정에 들어가지 못해 오산 미군부대의 비행학교에서 주말에만 연습을 해야 했다. 남들은 두 달 정도면 자가용 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따지만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3년이나 걸렸다. 이후 미국에서 정식 자격증을 딴 뒤 4년 전 지샹항공에 입사했다. 그동안 결혼도 미뤘다.
이처럼 억척스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온 전도양양한 여성 조종사가 중국 인터넷의 홍위병식 비방과 이를 그대로 활자화한 언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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