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리비아 정보기관… 적과의 은밀한 뒷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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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기 이전부터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정보기관이 리비아 정보기관과 합작해 대담한 공작을 여러 차례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들이 철천지원수로 지내는 동안에도 정보기관들은 은밀한 결탁을 즐겼던 것이다.

4일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기관(MI6)은 2002∼2004년 리비아 정보국과 함께 반(反)카다피 활동을 벌이는 이슬람 테러 용의자의 리비아 송환 작전에 가담했다. 이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가 풀리기 이전이다. 유엔은 2003년 핵 포기 선언을 한 리비아에 대해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했으며 미국은 2004년 경제제재를 완화했다.

최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카다피 정권 몰락 직전까지 외교장관을 지낸 무사 쿠사가 트리폴리 시내에 소유하고 있던 정보국 해외정보국장 시절 사무실에서 기밀문서들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비아 출신 이슬람 급진주의자 목록을 비롯해 이들의 송환 일정, CIA가 작성한 이들의 심문 질의 목록 등이 적혀 있다. 내용을 보면 미국 영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홍콩 파키스탄 등의 정보기관들이 테러 용의자를 리비아에 송환하는 데 협력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CIA가 직접 리비아 반체제 인사를 체포해 카다피 정권에 넘겨주기도 했다. 현재 리비아과도국가위원회(NTC) 군사위원장인 압델하킴 벨하즈 반카다피군 사령관이 반체제 활동을 하던 시절인 2004년 태국 방콕에서 CIA 측에 생포돼 리비아로 강제 송환된 것이다. CIA가 작성한 메모에 따르면 벨하즈 사령관은 알카에다와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리비아 이슬람투쟁그룹(LIFG)에서 활동한 혐의를 받아 방콕에서 체포됐으며 트리폴리로 송환됐다. 당시 그는 임신 4개월인 아내와 함께 있었으며 CIA는 그가 리비아에서 고문받을 것을 알고도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보기관 MI6도 벨하즈로부터 테러 관련 정보를 얻어냈다. 그가 5일 영국과 미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자 이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독립적인 수사를 통해 MI6의 연루 사실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밝혔다.

MI6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이슬람을 겨냥한 암살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프랑스 정보기관과 함께 그를 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와 MI6가 정기적으로 리비아 정보국 요원들과 주고받은 팩스 문건에는 “너의 친구 마크”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등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현도 눈에 띄었다. 서방 정보요원들은 리비아 정보국에 잘 보이려 미묘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같은 사실은 서방의 대테러리즘 전략에 새로운 물음을 던지게 한다”고 5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CIA 제니퍼 영블러드 대변인은 “중앙정보기관이 자국민을 테러리즘과 다른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외국 정부와 협력한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한 바”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고위 관리는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벨하즈 사령관이 알카에다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단체에서 활동했었다는 사실도 앞으로 적잖은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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