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마약갱단, SNS를 향해 칼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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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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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현장 사진올린 20대 2명 처참히 살해뒤 다리에 매달아… “조심하는 게 좋아” 경고장도
팔짱 낀 경찰… 누리꾼 분노

13일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시에 있는 한 보행자 다리에서 줄에 매달린 채 발견된 시신 2구.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매달린 다리 위에는 “인터넷에 아무 글이나 올리면 누구나 이렇게 된다”는 갱단의 경고가 적힌 종이 팻말이 놓여 있었다. 사진 출처 미국 CNN방송·영국 데일리메일
13일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시에 있는 한 보행자 다리에서 줄에 매달린 채 발견된 시신 2구.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매달린 다리 위에는 “인터넷에 아무 글이나 올리면 누구나 이렇게 된다”는 갱단의 경고가 적힌 종이 팻말이 놓여 있었다. 사진 출처 미국 CNN방송·영국 데일리메일
‘인터넷에 아무 글이나 올리면 누구나 이렇게 돼. 조심하는 게 좋아. 언제든 찾을 수 있으니.’

멕시코에서 마약 갱단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의 범행을 공개하고 비난한 시민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길에 전시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갱들은 시신 옆에 섬뜩한 경고를 담은 종이 팻말까지 남겼다.

미국 CNN방송은 “멕시코 동북부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 있는 한 보행자 다리에서 시신 2구가 줄에 매달린 채 발견됐다”고 16일 보도했다. 20대 초반의 남녀로 추정되는 희생자들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시신은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했으며 신체 일부가 없고 장기와 뼈가 드러난 상태였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손으로 휘갈겨 쓴 경고문을 남겼다. 글 아래에는 악명 높은 마약카르텔 ‘제타스(Zetas)’의 표식인 ‘Z’도 적혀 있었다. 다리나 도로에 시체를 유기하는 것은 멕시코 갱단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이번 사건은 사실상 ‘예고 살인’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멕시코 SNS에선 누에보라레도에서 갱단의 보복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다. 마약 관련 사건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SNS 이용자나 블로거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갱단들이 보복 움직임에 나섰다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최근 5년간 마약 관련 범죄로 숨진 이는 3만4000명을 넘는다. 정부요인이나 언론사주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언론은 갱단에 대한 보도를 꺼렸고, 경찰도 갱단 검거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시민들이 SNS를 이용해 범죄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인터넷 광장 ‘알 로호 비보’와 블로그 ‘델 나르코’ 사이트에 직접 사건 현장을 찍어 올리는 등 갱단의 악행을 고발했다.

자신들의 범행이 잇달아 공개된 것에 불만을 품은 갱들이 눈엣가시 같은 SNS 이용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 살해했지만 경찰은 여전히 범인 검거에 소극적이다. 지역 경찰은 “36시간이 지났는데도 찾아오는 유족이 없어 아직 신원 확인을 못했다”라며 “SNS 관련 살인사건은 처음이라 상급기관이 조사에 나설 계획”이란 짤막한 성명만 내놓았다. 갱단과의 대결에 전의를 불태우는 건 오히려 시민들이다. 페이스북 등에 “겁내지 말자. 안타까운 희생이었지만 이건 갱들도 두려워한단 뜻”이란 내용의 글들이 매 시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SNS에서 개인정보를 감추는 방법을 설명하는 글도 계속 퍼지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너무 무섭지만 우리마저 입을 닫으면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고 썼다.

올 들어 중동의 재스민 혁명 시위 현장을 비롯해 지구촌 곳곳 격변의 현장에서 SNS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잔혹한 보복범죄가 발생함에 따라 SNS를 통한 고발자들의 신원 보호 등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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