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군복 만들었던 獨 명품 패션브랜드 휴고보스 ‘용기있는 커밍아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3일 03시 00분


“2차대전때 근로자 징용-학대 사과”

휴고보스
독일의 명품 패션 브랜드 휴고보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군복을 만들면서 강제 근로자를 고용하고 학대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휴고보스는 히틀러 나치 독일 시절 이 회사의 역사를 다룬 ‘휴고보스, 바이마르공화국과 제3제국 시절(1924∼1945)의 의류기업사’ 발간과 관련해 21일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시절 휴고보스의 공장에서 고통받은 이들에게 깊은 사과를 표시하고 싶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로만 쾨스터 독일 육군대 교수가 쓴 총 104쪽 분량의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게슈타포가 납치해온 폴란드인 140명과 프랑스인 전쟁포로 40명을 강제 근로자로 고용한 휴고보스가 충성스러운 나치였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휴고보스의 필리프 볼프 수석 홍보 부회장은 “우리는 아무것도 숨기길 원치 않는다”며 “나치 시절의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휴고보스에 관련된 피고용자, 고용주, 고객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의무다”라고 말했다.

쾨스터 교수는 “휴고보스는 군복 생산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나치가 주창했던 국가사회주의 신봉자였다”고 밝혔다. 휴고보스는 이 책의 저술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지만 내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쾨스터 교수와 회사 양측은 밝혔다.

이 책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무명 재단사 휴고 보스가 1924년 자신의 이름을 따 독일 메칭겐에 설립한 휴고보스는 독일 경제가 나빠지면서 파산했으나 1931년 휴고 보스가 나치당에 가입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이후 나치당에 대규모로 갈색 셔츠를 납품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어 1938년부터 나치의 장교제복과 군복, 작업복을 만들며 명성과 부를 동시에 얻게 됐다. 당시 휴고보스가 디자인한 나치의 장교제복은 날카롭게 살아 있는 어깨선과 다리가 길어 보이는 가죽 부츠, 허리를 강조한 굵은 가죽 벨트로 강렬한 남성적 이미지를 풍겨 제복 역사상 가장 멋진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 ‘발키리’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나치 독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디자인된 정권이었다. 휴고보스가 만든 제복들은 정말 끝내주게 아름답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이 회사는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게 되자 1940년 전쟁포로와 강제로 납치된 노동자를 생산 현장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친나치 행적과 강제 동원된 근로자를 고용하고 학대한 것에 대해 휴고보스의 사과를 요구하는 비판론자들이 만든 풍자 이미지.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과 휴고보스의 로고를 합성했다. 휴고보스는 21일 용기 있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친나치 행적과 강제 동원된 근로자를 고용하고 학대한 것에 대해 휴고보스의 사과를 요구하는 비판론자들이 만든 풍자 이미지.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과 휴고보스의 로고를 합성했다. 휴고보스는 21일 용기 있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2차대전이 끝난 뒤 휴고보스는 나치 부역 죄로 재판을 받고 10만 마르크의 벌금을 내면서 사업권마저 박탈당해 한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48년 설립자 휴고 보스가 사망한 뒤 회사는 우편배달원, 경찰관 제복을 생산하는 쪽으로 선회했고 1953년에는 남성복 정장을 선보이면서 재도약하기 시작했다. 1967년 회사를 물려받은 홀리 형제가 1970년대 초부터 남성복에만 집중한 결과 휴고보스는 기성복 시장에서 다시 명성을 얻게 됐다. 휴고보스는 현재 세계 110여 개국에 6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휴고보스의 명성은 높아져 갔지만 1999년 미국 뉴저지에서 2차대전 때 강제노동을 당한 근로자와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친나치 행적을 둘러싼 비판과 논란은 끊이지 않아 왔다. 전쟁 시절 휴고보스의 사사가 기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뮌스터 학술 엘리자베스 팀이 인터넷 아카이브 형태로 만들었다. 당시 자료에는 강제 근로자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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