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인근 버테이비아에 있는 페르미연구소 지하에 놓인 테바트론의 일부. 테바
트론에서는 양성자와 반(反)양성자 사이의 충돌이 초당 1000만 번 일어난다. 한 번 충
돌할 때마다 새로운 입자 수백 개가 생성된다.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제공
미국 정부가 미국 입자가속기의 상징인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원형가속기 ‘테바트론’을 28년 만에 ‘셧다운(가동 중지)’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7월 애틀랜티스호를 마지막으로 30년 만에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최근 경제 침체로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우주 프로젝트와 가속기 등 과학 투자를 대폭 줄이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페르미연구소는 테바트론을 30일 오후 2시(현지 시간) 영원히 가동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 물리학의 힘을 상징하던 테바트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테바트론은 테라전자볼트, 즉 1조 전자볼트(1TeV)의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는 장치라는 뜻이다. 둘레 길이만 6.28km에 이르는 이 원형가속기에서는 양성자들이 1TeV로 부딪친다.
1983년 테바트론이 완공될 당시 미국에는 ‘미국을 상징할 강력한 가속기를 건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1995년 이런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자를 비롯해 자연계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12개 중 끝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던 마지막 입자 ‘톱쿼크’를 테바트론 실험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 과학계는 테바트론이 “금세기 마지막 숙제를 풀었다”며 열렬히 환호했다. 테바트론의 성과에 힘입어 페르미연구소는 명실상부한 입자물리학 연구의 메카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테바트론의 입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르미연구소의 ‘영원한 라이벌’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2009년 테바트론보다 훨씬 큰 원형입자가속기 ‘LHC’를 완공했기 때문이다. LHC는 둘레 길이만 27km로 테바트론보다 4배 이상 규모가 크다.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에너지도 7조 TeV로 테바트론의 7배이다.
더 크고 더 센 LHC가 테바트론의 기록을 모두 깨면서 테바트론은 여러모로 압박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 경제까지 휘청거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페르미연구소의 한 해 예산은 2009년 기준으로 약 41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10%인 400억 원이 테바트론의 전기료로 나간다. 물리학 예산 전반을 감축하던 미국 의회는 테바트론에 예산을 지원해 줄 명분을 찾지 못했다.
피에르 오돈 페르미연구소장은 “가속기 분야에서는 현재 성능을 능가하는 새로운 가속기가 등장하면 (새로운 가속기를 넘어 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HC보다 작고 노후한 테바트론으로서는 명예롭게 가동 중단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는 뜻이다.
28년간 미국 과학계를 지탱했던 테바트론의 ‘은퇴’ 소식에 미국 과학계는 침울한 분위기다. 테바트론 책임자인 로저 딕슨 박사는 과학 저널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셧다운 기념식은 침울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르미연구소는 테바트론 가동 중단 이후에는 중성미자(우주를 이루는 기본입자)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테바트론 외에 페르미연구소에 있는 작은 가속기들을 이용해 중성미자의 물리적 성질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중성미자는 최근 빛보다 빠르다는 주장이 나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페르미연구소는 이를 위해 미 에너지부에 ‘프로젝트 X’라는 새로운 복합 가속기 건설을 제안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