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지금]쑨원 ‘삼민주의’가 反정부 조장? 일대기 다룬 오페라 초연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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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주년(10일)을 앞둔 중국 정부의 심사가 복잡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신해혁명을 주도한 쑨원(孫文)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쑨얏센(쑨원의 영문 이름) 박사’에 대한 사전취재가 봉쇄됐다고 2일 보도했다. 13일 홍콩에서 첫 공연이 예정돼 있어 언론들이 리허설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제작사인 오페라홍콩 측에서 최근 접근불가 조치를 내린 것이다.

‘쑨얏센 박사’는 당초 지난달 30일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초연될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취소된 바 있다. 당시 제작사는 특별한 이유를 내놓지 않아 외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왔다. ‘쑨얏센 박사’는 신해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작품으로 작곡에만 4년이 걸렸다. 전체 3막 중 1막은 5월 미국 뉴욕에서 시사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작 중국 내에서 ‘요주의 공연’으로 전락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극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정부가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신해혁명은 봉건 잔재를 일소하고 근대 중국의 출현을 가능케 한 기념비적 혁명이다. 쑨원은 당시 민족·민권·민생 등 삼민주의를 내걸고 혁명을 이끌었다. 중국 정부도 반봉건이라는 기치에는 동의하지만 삼민주의 이념이 자칫 현재의 내부모순을 자극하는 기폭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민주의 중 민족주의는 청조를 몰아내자는 것이며, 민권주의는 유럽식 공화정 확립, 민생주의는 지주의 불로소득 억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SCMP는 “정부 당국은 쑨원에 대한 ‘정통 해석’만 인정할 뿐 그 외의 해석을 경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한 공연예술가는 “(공연 취소 등) 이런 일은 그리 놀랄 만한 게 아니다. (정부의) 지도자의 한마디만으로도 늘 발생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올 상반기에도 베이징의 일부 대학이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기로 했지만 취소된 적이 있다. 지난주 톈궁(天宮) 1호 발사를 대대적으로 자랑하는 등 경제 군사 과학 등 각 영역에서 자신감을 과시하는 중국이지만 근대 중국의 문을 연 삼민주의의 기본 이념조차도 껄끄러워하는 듯한 모습에서 중국체제가 안고 있는 고민이 엿보인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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