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청년층의 시위가 ‘1% 대 99%’라는 자극적 슬로건을 중심으로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의 공격 목표는 지난 십수년간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며 거액 연봉잔치를 벌여온 월가 금융자본과 고임금 종사자들의 모럴해저드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5일(현지 시간)에는 노동계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월가 시위에 대거 참여 또는 동조할 예정이어서 최대 규모 시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위대 웹사이트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5일 오후 4시 30분 뉴욕시청부터 맨해튼 남부 리버티플라자까지 행진을 벌일 예정이며 이 행진에 뉴욕 시의 교원노조와 운수산업 근로자 노조가 참여할 것이라고 4일 밝혔다. 행진에는 2만 명 이상의 뉴욕 시립대 교수와 직원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고 전국간호사연맹(NNU)도 행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시카고 등으로 확산되는 시위는 워싱턴에까지 상륙할 예정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 내 진보성향 시민단체인 무브온닷오르그(MoveOn.org)는 10∼16일 지역 단위로 산발적 시위를 한 뒤 다음 달 17일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
시위대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이른바 ‘미국 내 1%’다. “1%의 탐욕과 부패를 99%가 더는 참지 않겠다”는 주장을 내걸고 있다. 시위대의 거점인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만난 제이 씨(30·연극배우)는 “미국 1% 부유층이 국가 전체 부(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실제론 맞지 않는 계산이지만 시위대들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 사회가 ‘20 대 80’의 불평등 구조를 넘어 ‘1 대 99’라는 승자독식사회로 갔다는 분노를 반영한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톰 앨리슨 씨(26)는 “우리를 이념적인 잣대로 보지 마라.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 대 99’라는 자극적인 구도가 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다. 미 정부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회사 등을 살리기 위해 7000억 달러를 쏟아 부으면서 금융회사가 살아야 국민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살아남은 월가 금융회사들은 보너스만으로 200억 달러를 나눠 갖는 등 ‘돈잔치’를 벌였다.
반면 2008년 이래 국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8월 말 미국에서 압류주택 통보를 받은 주택이 전달보다 7% 늘어나며 9개월 연속 증가했다. 지난 4년 내 가장 가파른 증가 추세다. ‘1 대 99’까지는 아닐지라도 빈부격차는 사상 최고 수준에 달해 있다. 2일 주코티 공원을 방문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월가는 자본의 잘못된 분배로 부자가 됐다. 손실은 사회로 파급시키고 수익은 사유화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왜곡된 경제일 뿐”이라고 했다.
젊은층의 분노에 백악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직 언론인 그레그 서전트 씨는 백악관 부대변인인 제이 카니 씨와 주고받은 e메일을 공개했다. 카니 부대변인은 “백악관은 월가 시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서전트 씨의 질의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경기침체에 대한 시위대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1 대 99’라는 자극적 대립구도를 자본주의의 원조 격인 미국이 어떻게 소화해 낼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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