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주에 사는 제니퍼 클라인 씨(28)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답신을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를 잃어 건강보험이 해지된 후 열흘 만에 둘째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사연을 담은 석 장의 편지를 보냈고 3주 뒤 답신을 받았다.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의회가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양당의 지지를 얻기 힘들면 통과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옳은 일을 하시오. 정치적인 일을 하지 말고. 모든 미국인이 지지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지난해 3월 미국 텍사스 주에 사는 토머스 리터 씨는 폭스TV를 통해 건강보험 개혁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마뜩잖게 생각해 온 ‘모태’ 보수주의자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건보개혁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펜을 들었다. 대통령에게 직접 분노가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얼마 뒤 리터 씨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필답장을 받았다.
“친애하는 리터 씨, 입법 과정에 있어 당신과 같은 비판의 목소리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보개혁안 통과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분명 정치적으로는 매끄럽지 못했지만요….”
생각의 차이는 평행선이었지만 비판에 귀를 기울여준 대통령의 성의에 감동한 그는 오바마 정책이 갖는 장단점을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일 저녁 일과를 마친 뒤 ‘숙제 보따리’를 푼다. 국민들이 보낸 편지 중 엄선된 10통을 읽고 이 중 두 개 정도를 골라 친필로 답장을 써주는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가공되지 않은 민심을 듣기 위해 취임 둘째 날부터 거르지 않고 해오는 ‘방과 후 숙제’다.
대부분의 편지는 실업, 할부 구입, 경제적 곤란에 관한 내용이다. 때로는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못된 애들을 선생님들이 내버려두고 있어요’라는 내용의 교육현실을 질타하는 열한 살 초등학생의 편지도 있었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에게 배달된 편지들이 ‘10통의 편지: 미국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이번 주 발간된다. 워싱턴포스트 백악관 출입기자를 지낸 저자 엘리 사슬로 씨는 미 공영라디오 NPR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가끔 편지를 읽고 무력감을 맛본다”며 “문제가 시급하고 절망적인 데 반해 행정은 느려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국민의 편지는 꽤 과학적이고 세심한 시스템에 의해 분류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하루 2만 통가량의 편지와 e메일, 팩스로 넘쳐나는 백악관에는 서신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백악관 인근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편지분석관 55명과 인턴 25명, 약 1500명의 자원봉사자가 매일 배달된 모든 편지를 읽은 뒤 사법, 실업, 건강보험개혁, 이민 등과 같은 주제별로 분류한다. 이후 주제별로 골고루 총 10통의 편지가 최종 선정된다. 이 같은 방식에 대해 사슬로 씨는 “오바마 대통령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평했다.
10일 미국 메릴랜드 베세즈다의 월터리드육군의료센터를 방문한 뒤 워싱턴으로 돌아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잔디광장을 거닐며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국민과 직접 편지를 주고받은 대통령이 오바마가 처음은 아니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하루에 5장 정도는 꼭 답장을 썼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노변정담’으로 국민과의 거리 좁히기에 힘썼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털어놓으라”고 말한 뒤 1주일에 무려 45만 통에 달하는 편지를 받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로 시끄러웠던 1998년 한 해에만 226만 통의 편지와 100만 통이 넘는 e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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