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개국 951개 도시서 동시다발 ‘反월가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유럽이 가장 뿔났다… 伊 로마 10만명 ‘분노의 행진’

미국 워싱턴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까지 지구촌이 분노한 날이었다. ‘1%가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와 금융의 종말’을 요구하는 시위가 세계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세계 언론은 “분노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로이터통신) “분노가 폭력으로 확산됐다”(더타임스)라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곳곳에서 강경한 시위를 벌였다고 일제히 전했다.

○ 경제위기 유럽은 강경, 아시아는 온건

재정위기를 맞은 각국이 대대적인 긴축정책을 펴면서 일자리가 줄고 서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유럽은 다른 지역보다 시위가 강경했고 폭도들까지 등장해 유혈충돌을 빚었다.

유로존 3위 경제대국으로 최근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시내 레푸블리카 광장을 중심으로 10만 명이 집결해 가장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행진하는 도중 국방부 청사 별관 건물에 불을 질렀고 차량 4대를 방화했다. 백화점과 은행 건물 유리창 수십 장을 파손하고 이탈리아 국기와 유럽연합(EU)기를 불태웠다. 무정부주의 단체 소속으로 폭력 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은 헬멧과 검은 모자, 복면을 쓴 채 보도블록과 유리병, 쓰레기 등을 경찰에 던지며 저항했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청사 옆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도 경찰과 몸싸움이 빚어졌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인근에서도 경찰에 저항한 5명이 체포됐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원조 격인 미국도 뉴욕 전체에서 6000여 명이 시위에 참가해 74명이 체포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위를 계속해온 탓인지 동력이 떨어졌고 시위의 강도도 높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면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금융위기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곳들은 소규모로 조용한 집회가 주를 이뤘다. 일본 도쿄에서는 도심의 부유층 거주 지역인 롯폰기와 히비야 공원에서 100여 명씩의 시민만 참여한 가운데 빈부격차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대만 타이베이, 홍콩은 100여 명씩이 참여해 짧고 온건한 시위를 벌이는 데 그쳤다.

○ “열기 더 확산될 것” “수그러들 것”


미 컬럼비아대의 토드 키틀린 교수는 “인류가 발전하면서 역사적 단계를 거치며 형성돼 온 자본주의가 이런 시위로 무너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반전운동이나 민권운동에 비해 훨씬 짧은 시간에 많은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는 점은 훌륭한 성과이며 앞으로 새로운 대중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런던 시위에 직접 참여한 노리치 출신 벤 워커 교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국제적인 연대의식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로마의 시위를 예로 들며 재정적자 같은 경제 문제에 정치적 리더십까지 부족한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경우 근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폭력 시위는 물론이고 폭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반면에 머지않아 분노의 열기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23일 EU 정상회의와 다음 달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유럽 재정위기와 경제 살리기에 대한 신뢰할 만한 수준의 국제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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