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을 사랑한 백인청년, 살해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7일 11시 27분


2년 전 한국인 성매매 여성을 사랑한 호주 백인 청년이 멜버른 성매매 업소에서 이 여성을 구하려다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한인사회는 물론 현지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뉴시스가 보도했다.

이 청년은 끔찍하게 살해되었으나 경찰은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살해한 중국인 남성은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됐다.

뉴시스에 따르면 잊혀지는 듯했던 이 사건은 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 기자와 ABC-TV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이 공동취재를 통해 집중보도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고.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수사의 미진한 점과 의혹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경찰은 결국 재수사에 나섰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백인청년은 20대 에이브람 파포(Abraham Papo)로 직업은 대중통제요원(crowd controller)었고, '케이시'(Kathy)라는 예명을 가진 한국인 여성은 국제 인신매매조직의 꼬임에 넘어가 호주 멜버른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백인 청년을 살해한 중국인 남성 정더쥔(영어명 Dejunzheng)은 성매매 업소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다음은 뉴시스가 시드니모닝헤럴드 보도내용을 토대로 사건 경위와 수사 과정 등을 정리한 것.

●백인청년 두개골-턱뼈-코뼈 골절, 폐 기흉 된 채 끔찍하게 살해당해

지난 2009년 2월12일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 호주 사우스 멜버른 요크가 59번지. 한국·중국여서 성매매업소인 '마담 레오나스' 앞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백인 청년 에이브람이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거구의 중국인 정 씨가 손과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작은 쇠막대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했다.

정 씨는 경찰이 '그 쇠막대로 이 사람을 때렸느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답했다. 에이브람은 처음엔 의식이 있었으나, 부상이 심각해 이내 숨지고 말았다.

에이브람에 대한 감식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양팔의 조직이 손상됐으며 턱뼈, 코뼈, 두개골, 갈비뼈가 골절되고 기도 압착, 그리고 대형 교통사고 때 흔히 발생하는 폐 기흉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에이브람이 업소의 손님이었는데 이날 갑자기 들이닥쳐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계산대에서 휴대폰과 현금 등을 빼앗아 달아났다고 했다.

이어 정 씨가 "달아나던 에이브람을 뒤쫓자 그가 나를 쇠막대로 때려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8개월이 지난 2009년 10월 정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불기소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에이브람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에이브람은 사건 당일 '케이시'라는 이름의 20대 한국인 여성을 구하기 위해 마담 레오나스를 찾아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인 여성을 사랑한 백인 청년 가족과 함께 몇 개월 간 살기도

케이시를 사랑한 에이브람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 케이시를 데려와 몇개월 동안 동거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브람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케이시가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에이브람의 모친인 디나(59·여) 여사는 "케이시는 내겐 그저 사랑스러운 소녀였다"며 "그녀는 옷을 야하게 입지도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스웨터와 숄을 짜 주곤 했는데 에이브람이 그녀를 돌봐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에이브람은 케이시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그녀의 울음과 비명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브람은 그녀와 통화도중 누군가 전화기를 가로채 "이 여자 근처에 얼씬거리면 토막을 내놓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먼저 끊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브람의 형 데이비드(35)는 "동생은 피살되기 몇 시간 전에 한 경찰서로 가서 케이시가 성매매 일을 강요당하고 있었고, 이젠 시드니로 강제로 옮겨져 걱정이 된다며 도움을 구했다"고 증언했다.

또 "어머니께는 케이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만 말했지만, 나에게는 케이시가 성매매여성으로 큰 곤경에 처해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그는 동생이 마담 레오나스 업소를 운영하는 아시안 남자와 전화로 언쟁을 벌인 후 집을 나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도 에이브람은 그녀를 돌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수사의혹 파헤치자 경찰도 결국 재수사 나서

이와 같은 사실이 시드니모닝헤럴드와 ABC TV 시사 프로그램의 집중 보도로 일반에 공개되자 여론은 재수사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제 인신매매 조직은 아시안 여성들을 꼬드겨 호주에 유학 오도록 한 뒤 돈을 빌려줬다. 이들은 정작 호주에 와서는 성매매업소에서 매춘을 통해 돈을 벌어, 빌려 준 돈을 갚도록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신매매조직과 정 씨 등에 대한 연방경찰의 수사와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에이브람의 죽음에 대한 검시관 심리가 지난 7월 간단한 약식 심리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약식심리는 증인 소환도 없이 정 씨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인정되어 결국 사건이 영원히 종결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약식심리가 있기 몇 개월 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인신매매 리서치를 하다가 에이브람 사건을 알게 되었고 ABC TV 제작진과 공동취재에 나섰다.

에이브람의 가족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실을 밝혀줄것을 요구하며 저명한 인권 변호사인 줄리안 맥마흔 씨에게 이 사건을 맡겼다. 정씨의 전과 기록 등은 선임된 맥마흔 변호사에게 전달됐다.

약식심리 전날 맥마흔 변호사는 제니퍼 코트 검시관에게 편지를 써 에이브람의 끔찍한 죽음이 정 씨의 정당방위 주장과 일치하지 않고, 고의적인 폭행치사에 부합된다며 심리의 즉각 연기와 새로운 수사를 요구했다.

그는 또 경찰이 에이브람이 여성 인신매매와 학대로부터 고통을 받던 범죄조직에서 케이시가 탈출하는 것을 도우려고 하다가 살해당했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결국 경찰은 최근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조사에 착수했고 현재 케이시의 소재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재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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