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스칼라튜 `美 北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독재정권서 태어나 분단 한국서 공부한 운명이 계기"
북한의 체제 모델을 추종하던 동유럽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이 붕괴한 후 선발된 루마니아의 첫 한국 국비 장학생이 20여 년이 흘러 미국의 북한인권단체 수장으로 변신했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으로 지난 8월 발탁돼 워싱턴 DC에서 북한인권문제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그레그 스칼라튜(41) 씨는 1989년 소련 붕괴와 동구권 몰락이라는 세기적 대격변의 와중에 인생의 행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해 12월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이 붕괴할 때 스칼라 튜 씨는 국립 부쿠레슈티대학 영문학과 1학년 학생이었다.
개방화 흐름과 함께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온 책과 자료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한국의 개발사를 알게 됐다.
어느 날 스칼라튜 씨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썼고, 이 글이 계기가 돼서 1990년 3월 한-루마니아 수교 이후 한국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뽑혀 루마니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스칼라튜 씨는 18일(미국 동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 6월 경 당시 한창이던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는데 루마니아 교육부로부터 '한국으로 가는 유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그 이전 한국에서 공부한 루마니아 사람이 없었던 데다 나 자신이 해외여행 한번 해 본 적도 없었지만 동양, 특히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때여서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사상 첫 한국 유학생으로 그해 8월 서울에 난생 처음 발을 디딘 스칼라튜 씨는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한국어과정을 수료하고 1991년 9월 서울대 외교학과에 편입했다.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학위를 딴 후 2000년 미국 최초의 국제법과 외교학 분야 대학원인 터프츠대학 플레처 스쿨에 입학, 국제법, 국제인권법, 국제기구, 동북아, 국제개발 등을 배웠고 북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았다.
플레처 스쿨 졸업 후 민간 국제개발 컨설팅회사인 국제과학기술연구소(ISDI)에서 활동하며 세계은행, 미 국제개발처(USAID) 등과 함께 일했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잠비아에서도 파견 근무를 하며 경력을 쌓았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경험을 쌓은 후 2008년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 연구원으로 들어와 한반도 관련 이슈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ISDI 근무 시절 파트 타임으로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북한인권상황을 전하고, 북한주민들에 외부소식을 전하는 대북방송에도 참여했다.
그의 역량은 높은 평가를 받아 미국 내 북한인권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북한인권위 이사회는 올여름 퇴임한 척 다운스 사무총장의 후임자로 스칼라튜 씨를 낙점했다.
미국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북한과 '닮은꼴'인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공부한 자신에게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고 그는말했다.
스칼라튜 씨가 사무총장을 맡은 북한인권위는 30여 년 전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에 대한 구명 활동으로 유명한 리처드 앨런 백악관 전 국가안보보좌관, 오바마 행정부 대북인권특사로 거론됐던 브루킹스 연구소 로베르타 코언 선임연구원이 이사회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미국 내 대표적인 북한인권단체로 2002년 설립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스칼라튜 씨는 서울대 유학 중 만났던 한국인 아내와 1998년 결혼해 가족들과 워싱턴 DC 근교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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