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 ‘황금의 저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1일 03시 00분


나이지리아, 국제 금값 급등하자 불법광산 크게 늘어폐광물 버려 강 오염… 5세이하 2000명 심각한 납 중독

나이지리아 북서쪽 바게가 마을에 사는 네 살배기 우마르 (가명)군은 지난여름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부모는 아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양실조로 돌리기에는 실명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주민들은 ‘신의 저주’인 전염병 창궐을 의심했다. 그러나 진찰 결과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납중독’이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28일 “바게가 마을이 있는 잠파라 주에서 어린이 2000여 명이 심각한 납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수치는 5세 이하 유아에 한정된 것이다. 10대나 성인을 포함하면 납중독 환자는 몇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에 따르면 올해 들어 나이지리아 어린이 400여 명이 이미 납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AFP통신은 “전염병을 무색하게 하는 대규모 납중독은 이 지역에서 활개치고 있는 불법 채굴 때문”이라고 전했다. 잠파라 주는 지하광물 매장량이 많은 곳으로, 특히 금과 화학공업용으로 가치 높은 탄탈룸이 풍부하다. 최근 몇 년 새 세계적으로 금값이 치솟자 허가를 받지 않은 금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서방 세계의 금값 폭등이 아프리카 시골 어린이들의 시력을 앗아가는 비극을 빚은 것이다.

불법 채굴업자들의 마구잡이식 환경 파괴는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현지 언론 ‘나이지리아 트리뷴’에 따르면 채굴업자들은 금 등을 추출한 뒤 남은 광석을 불법으로 인근 산하에 내다버렸다. 버려진 광석엔 납이 대량으로 함유돼 있었고, 이는 대부분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이는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납중독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신체로 들어갈 경우 소화기관이나 뇌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피해가 훨씬 크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납중독이 면역체계가 덜 형성된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고 피해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인보다 어린이 피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납중독은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최근 잠파라를 방문한 HRW의 제인 코언 연구원은 “회복되더라도 다시 오염지역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한 업체가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잠파라 지역 정화사업을 벌였지만, 현재는 자금난으로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현지 일간지 ‘데일리타임스 나이지리아’는 “납중독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조사를 발표한 나시루 트사페 정부 긴급사태대응팀장은 “예산이 빠듯해 서방세계의 도움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데일리타임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정부는 불법 채굴업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불법 금광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지금까지 기소된 사례가 단 1건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경찰은 “산이란 산은 모두 파헤쳐 놓았는데 붙잡을 증거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어린이 납중독은 최근 중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됐다. 지난달 상하이(上海)에서 납 생산 및 가공기업 인근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집단 납중독에 걸렸다. 상하이 환경보호국이 9월 푸둥(浦東) 캉차오(康橋) 진에 사는 어린이 1115명을 대상으로 혈액을 검사한 결과 32명에게서 혈중 납 농도가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납중독 어린이 가운데 15명이 입원치료를 받았고 17명은 통원치료를 받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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